이면 탐색기

2015년 11월 24일 화요일

'호빠 선수와의 로맨스'


  늘 내게 먹잇감(?)을 소개시켜주던 이자카야 사장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고 싶은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  

 채팅앱으로 스튜어디스 한 명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너무 마음에 들어 언젠가 비행 스케줄을 마치거든 꼭 자기 가게를 찾아오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녀가 동남아 스케줄을 마친 어느 하루, 인천공항에서부터 역삼동까지 그를 찾아와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막상 실물로 본 그녀는 카톡 프로필 사진만큼 매력적이지 않아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단골손님이 많은 와중에도 그녀에게 신경을 쓰느라 애썼고 혹여라도 심심해 할까봐 마침 찾아온 지인 테이블과 합석을 유도했다고 한다. 그녀가 자기 지인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는데 모든 술자리가 끝나고 그녀가 자기 주대를 계산치 않고 나가길래 아무리 가까운 지인이라도 주대정산만큼은 철저히 한다는 자기 원칙을 천명하며 계산을 부탁했다고 한다. 황당하단 표정의 그녀는 결국 안주 두 개와 사케의 주대로 7만 여 원을 결제했고 택시로 귀가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다음날 그녀는 자신이 그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것이니 주대를 반환해달라고 문자를 보내왔는데 그는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어차피 그녀와 다시 만날 때 자길 보러온 고마움에 한우를 쏠 생각이었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거듭되는 반환요구 중에 서로 감정이 격해졌고 그에게 영업 그딴 식으로 하며 살지 말란 모욕 등 크게 다퉜다고 한다. 다음날 그녀는 네이트판에 그의 업장정보와 신상정보를 담아 불매를 유도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녀의 이야기:

 그녀는 그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긴 했나보다. 그와 단둘이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다른 손님들이 모두 가게를 나갈 때까지 그를 기다렸는데 정작 그는 주방아주머니가 하혈을 해 가게를 마감하고 데려다 준다고 했다. 방금 전까지 그 주방아주머니도 함께 착석해 술을 마시는 둥 멀쩡해보였는데 말도 안되는 핑계라는 생각에 빈정이 상했다고 한다. 그가 불러준 택시가 도착했고 공항동까지 그 새벽시간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던 그녀는 자신에게 계산서를 들이미는 그에게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자기가 주문한 사케는 그의 지인과 합석했던 테이블에서 함께 소모되었기에 부당하다고 여겼지만 어이 없는 나머지 카드를 건넸다고 한다. 아마도 상습적으로 이렇게 여자를 달콤한 말로 유혹해 가게로 초청하고 술과 안주를 팔아먹는 양아치라고 네이트판에 그녀는 게시물을 올렸다.

 나의 이야기:

 그의 하소연을 듣고 그가 보낸 링크를 통해 네이트판에 게재된 글을 보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명예훼손의 모든 구성요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가게로 놀러오란 제의에는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함의가 없음에도 그녀는 사회적 통념을 운운하며 그를 모욕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를 호빠선수로 모멸하는 내용이 담겼으며 계산서로 장난을 치는 사기꾼으로 매도하며 인터넷 상에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사실 그녀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비록 법리적 판단으론 그녀가 주대를 지불해야할 의무가 있음에도 그녀는 그를 만나보겠다는 일념으로 인천공항에서부터 그 먼 거리를 한달음 달려온 것 아닌가. 더군다나 그와 뜨거운 밤을 기대했을 수도, 고즈넉한 둘만의 술자리를 기대했을 수도 있기에 그가 장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 것 아닌가. 아무리 참작가능한 사정이 있더라도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나 난 그에게 한마디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가 계산서에 일이만원 슬쩍 더 붙이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는 것도, 타인의 외로운 마음을 이용해 영업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는 것도 익히 겪어봤기에 그를 옹호할 수 없었다. 고민했다. 이 부탁을 모른 체 하고 그냥 그의 이자카야에 발길을 끊는 방법이 제일 편한 선택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나 역시 그를 내 목적에 맞게 이용해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의 이자카야를 이용한 것도 십 수 차례. 따끔한 한 마디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의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냐고 닥달하는 그의 모습에서 정나미가 떨어졌지만 내가 잔소리를 하려면 나 역시 성의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한 시간을 꼬박 들여 고소장을 작성해주었다. 이하는 내가 그를 위해 작성한 고소장이다.
    
고    소    장
1. 고 소 인
성    명 (상호·대표자)
주민등록번호
주    소
전    화
대리인에
의한 고소
□ 법정대리인 (성명 :
□ 고소대리인 (성명 : 변호사, 연락처)
  
2. 피고소인
성    명
주민등록번호
주    소
전    화
기타사항
   
3. 고소취지
고소인은 피고소인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오니 처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4. 범죄사실
● 고소인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xxxx에 소재한 일반유흥주점 xx(이하 '이 사건의 점포')바의 점주입니다.
● 피고소인은 고소인의 초청으로 2015년 10월 xx일 오후 xx:xx 이 사건의 점포에 내점하여 익일 오전 xx:xx까지  이용하였고, 주대와 식대(이하 '이용요금')로 일금 _____원을 고소인에게 신용 결제하였습니다. 
● 2015년 10월 xx일 피고소인은 국내 주요 포탈사이트 게시판에 고소인의 초청으로 내점한 경위를 들어 '이용요금'을 피고소인에게 청구한 행위가 사회적 통념 상 부당하다며 불매운동을 벌였고, 고소인이 호빠 선수라는 둥 사실무근한 허위사실을 들어가며 고소인을 멸칭하였습니다. 아울러 사건 당일 이용요금에 대한 상세내역이 적시된 영수증을 받고도 과다청구했다는 허위사실을 들어 고소인과 고소인이 운영하는 업장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게시물을 게재하였습니다. 
● '이 사건의 게시물'에는 업장 위치와 상호, 고소인의 외양 묘사가 구체적으로 담겨있어 명예훼손의 대상이 특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5. 고소이유
● 2015년 10월 xx일 고소인의 초청으로 피고소인은 이 사건의 점포를 방문하였으며 이용요금을 직접 신용결제하였습니다. 이는 초청에 앞서 고소인이 피고소인에게 무상으로 주류와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일체의 언급이 없었음에 대한 방증일 것입니다. 그러나 익일 피고소인은 사회적 통념을 들어 이용요금 지불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문자메세지를 통해 전해왔고, 이용요금 반환을 요구해왔습니다. 고소인이 불가함을 밝히자 피고소인은 고소인을 휴대전화 유선 상으로 모욕함으로써 언쟁이 일어났습니다.
● 2015년 10월 xx일 이용요금 반환을 거절당한 피고소인은 일 조회수가 xxxxxx에 이르는 네이트판(?????)에 '호빠 선수와의 로맨스'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작성하여 고소인을 사회적 통념을 무시하는 파렴치한으로 모욕하였고, 이용요금을 과다청구했다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고소인과 고소인이 운영하는 업장의 명예를 훼손하였습니다.
● 현재 삭제처리된 '이 사건의 게시물'은 2015년 10월 xx일 xx:xx 기준 xxxxx회 조회가 이루어졌고, 업장 정보와 고소인의 외양 묘사가 담겨 있어 매출에 지장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 위와 같은 사실을 들어 고소하오니 조사하여 엄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6. 증거자료
□ 고소인은 고소인의 진술 외에 제출할 증거가 있습니다.
-문자메세지 캡쳐화면
-네이트판 게시물 캡쳐화면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 캡쳐화면
  
7. 관련사건의 수사 및 재판 여부
① 중복 고소 여부
본 고소장과 같은 내용의 고소장을 다른 검찰청 또는 경찰서에 제출하거나 제출하였던 사실이 없습니다
② 관련 형사사건
수사     유무
본 고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관련된 사건 또는 공범에 대하여 검찰청이나 경찰서에서 수사 중에 있지 않습니다 
③ 관련 민사소송
유         무
본 고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관련된 사건에 대하여 법원에서 민사소송 중에 있지 않습니다 
  
 본 고소장에 기재한 내용은 고소인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모두 사실대로 작성하였으며, 만일 허위사실을 고소하였을 때에는 형법 제156조 무고죄로 처벌받을 것임을 서약합니다.

  
2015년 10월 24일
고소인
(인)
  
 제출인
(인)

서울지방경찰청 귀중


 내 해결책:

쓴소리를 들려주려거든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게 예의라 생각한 난 고소장을 출력해 귀가 중 그의 가게를 방문했다. 그의 가게는 닫혀 있었고 난 왜 이 부질 없는 인간관계에 내 노력을 기울이는가 회의가 들었다. 그래도 한마디 쓴소리는 해야겠다는 결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은 내 계좌번호를 시작으로 내게 수임료 150만원을 송금해달라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지인할인임을 밝혔다, 성공보수는 형사합의금의 20%로 깎아주겠다고 했으니 꽤 파격적인 할인이다)
 나 역시 그의 부탁에 공짜로 해준다는 말이 없었고 그간 그의 주변사람들에게 시달려야했던 각종 법률상담에 소요된 내 시간에 대해서는 따로 청구치 않을테니 150만원만 먼저 송금하라고 메일 모두부에 적었다. 그리고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가 요구하는 수임료를 들었을 때 그가 느꼈을 기분이 그 여성이 그의 업장을 떠날 때 느꼈던 감정이나 다를 것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혹시라도 내가 정말 돈을 요구한다는 오해를 할까봐 비유였음을 밝혔고, 소장은 부탁대로 보내지만 정말 접수한다면 크게 실망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비록 잘못을 범했지만 서로 사과할 부분에 대해선 사과하고 그녀가 글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해결하라고 이야기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그에게서 온 카톡은 내 비유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그간 내가 줘온 도움에 대해 생색이나 내려는 내용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는 형에게 그간 끼친 폐가 고마워서라도 꼭 좋은 술을 대접하겠노라 말하고 있었고 재차 검찰 직접고소와 경찰을 통한 고소의 차이를 묻고 있었다. 또 얼마나 받을 수 있겠냐며 묻고 있었다. 화가 치밀지는 않았다. 그냥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내 의도를 설명하는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그제서야 그는 이해한 모양이다. 자기 생각이 짧았다며 내 말대로 하겠다고, 고맙다고 말하는 그였다. 그리고 다시는 그의 가게를 방문하는 일은 없을거란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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