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5년 10월 12일 월요일

공포를 극복하는 법: 귀신체험 in 라이프호텔


 영적 존재 혹 귀신의 존재를 딱히 부정하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귀신을 목격하거나 그에 유사한 체험을 해본 적도 없고 그 흔하다는 가위 눌리는 경험조차 해보지 못한 연유로 한 번쯤은 꼭 이런 공포를 맛보고 싶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 말을 뱉기가 무섭게 잔혹귀에 희생을 당하는 영화와는 달리 아무 일도 없다. 그렇다고 겁이 없는 성격도 아니다. 벌레만 갑자기 날아들어도 난 사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저음의 괴성을 확연하게 내뱉어 행인들의 조롱섞인 시선을 모은 일도 있다. 그럼에도 난 겁에 질리는 상황을 분명 즐기는 것 같다. 이렇게 대담한(?) 내가 오싹한 체험을 한건 얼마 전 일이다.

 공덕에서 갈매기살을 구워먹으며 곁들인 과일향 소주에 그녀는 만취하고 말았다. 투정부리듯 잔뜩 비음 섞인 목소리로 내 곁에 꼭 붙어 칭얼대기를 한참, 그냥 택시에 태워 보내기엔 너무 취한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내 귀가길까지 생각하면 영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더군다나 그녀는 내일 일찍 출근해야한다고 했는데 왜 그리 엉망이 되도록 마셨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대로변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보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의도에서 밀려든 회식인파의 엑소더스가 시작됐기에 쉽사리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커피 마시러가자며 칭얼대는 그녀를 간신히 달래가며 연신 택시를 향해 손을 들어보지만 우리 앞에만 차를 잡는 일행이 네 팀 정도는 보였다. 그렇게 이십 여분이 흐르자 그녀는 그냥 근처에서 자고 아침에 바로 출근하겠단다, 나더러 신경쓰지 말고 그냥 집으로 가보라고 얘기하지만 졸지에 마마보이 노총각으로 전락당하는 기분이라 마침내 택시에 올랐을 때 조금의 주저도 없이 영등포 모텔촌으로 향했다.
 라이프호텔 앞에서 택시를 내려 카운터에 당도했고, 계산을 하려는데 취한 그녀가 극구 카드를 내미는 통에 뻔한 실랑이를 치르고서야 내 카드가 로맨틱.성공적.이 되었다.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동, 호수가 정확히 기억이 날 정도이니 괴이한 체험이긴 했나보다. 일반실이 없다며 직원이 건넨 키는 707호(L동). 십 몇 년 전에나 호텔만큼 시설이 괜찮은 모텔로 유명했지 지금은 많이 낡은 라이프호텔이었지만 들어가본 객실은 상태가 그럴 싸 했다. 별채에 자쿠지와 욕실이 갖추어져 있었고, 벽면 곳곳에 알록달록한 패널을 붙여 꾸며놓은 철 지난 유행의 베드룸까지 나쁘지 않았다. 둘 다 피곤했는지 객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옷을 훌훌 벗었다. 내일 출근을 앞둔 직장인 커플답게 각자 옷을 깔끔하게 개어놓거나 걸어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샤워부스로, 난 세면실로 향해 잠자리에 들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취한 중에도 메이컵을 꼼꼼하게 지우는 그녀를 침대에 누워 바라보며 여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들 무렵, 뭔가 객실 분위기가 냉랭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기분이겠거니, 그녀가 내 사타구니 사이로 다가와 우린 숙면 전 통과의례처럼 관계를 가졌다.

 원래 옆에 누군가를 두고 깊은 잠에 이르지 못하는 습성임에도 오늘만큼은 격무와 음주의 여파로 깊은 잠에 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 만 난 자다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방 안 풍경이 뭔가 음습하다는 느낌은 계속 받았지만 음침한 인테리어 탓으로 여겨 크게 마음에 두진 않았다. 그녀는 과중한 음주와 섹스의 여파로 숙면에 들 것 같더니 한 시간 여가 지나자 역시 자다깨다를 반복하는 눈치였다.
 갑자기 화장실에 있는 별채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도둑이라도 들었나 생각이 들어 정신이 번쩍 들며 별실 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분명 다른 객실의 소음도 아니오, 분명 별실에서 가벼운 체중의 인기척이 계속해서 들렸다. 그러더니 샤워헤드에서 1, 2초 정도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름이 돋으며 얼어붙었는데 잘 자던 그녀 역시 물소리에 잠에서 깬 것이다. 암흑 속에서 마주친 그녀의 눈은 나만큼이나 공포에 질린 눈치였다. 그녀가 나지막하게 털어놓기를 계속 환각상태 같은 얕은 꿈만 꾸느라 잠이 깊게 들지 않는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린 결국 또 몸을 섞었다. ㅋ 얕은 잠에서 함께 깰 때 마다 섹스를 했다. 그러자 마침내 날이 밝아왔다.

 후일 그녀도 분명 그 날 객실 공기가 뭔가 오싹했다며 좀 무서웠다고 얘기하는데, 난 분명 내가 들은 것이 착각 혹 오인이 아니었음을 확신함에도 공포심보다는 신기하단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귀신을 옆에 두고 섹스에 정진함으로 신경을 스스로 분산시킨 내 대범함이 재밌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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