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5년 10월 26일 월요일

자극제


 이 여자. 감도가 좋다.
 목덜미에 입술이 다가갔을 뿐인데, 귓볼에 숨결이 스쳤을 뿐인데, 꼭 끌어안고 페니스를 은근하게 부벼대며 가벼운 키스를 했을 뿐인데. 도톰한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신음과 자극에 반응하는 가벼운 몸의 떨림이 분명 과장 없는 진짜다.
 하긴 그녀의 오랜 남자친구는 더 이상 그녀를 안으려 하지 않는다고 언젠가 말했다. 빼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큼지막하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하얗고 실크결 피부를 가진 20대 후반의 그녀는 내 눈에 충분히 매력적이었음에도 말이다. 아니. 어쩌면 지인의 오랜 연인의 나신이 눈 앞에 펼쳐져 있고 그녀에게 안대를 씌운 채 마음껏 유린하고 있는 이 상황이 더 매력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낯선 내 손길 하나하나에 반응을 자제하려 애쓰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이성의 끈을 놓고 날 만끽하기 시작했다, 날 탐하기 시작했다. 불과 한 시간 여 만에 그녀가 변해가는 모습에서 나 역시 이성의 끈을 놓고 게걸스레 그녀를 탐닉하게 되었다.
 길어지는 정사 탓에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다며 콘돔을 벗어도 좋다는 그녀. 안전한 날이라고 덧붙인다. 나 역시 그게 더 생생히 그녀를 느낄 수 있고 서로에게 세밀한 자극을 주는걸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우린 서로를 너무 모른다. 아프기 시작했다는 말을 핑계삼아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자고 얘기했다. 그녀의 눈 속에서 실망의 빛이 스치운 게 보였다. 사실 우리에게 마무리 할 오늘은 있을지 언정 새로운 내일은 없다는걸 서로 알고 있으니까.
 뜬금 없이 나더러 되게 잘한다며 웃는다. 으쓱했지만 어떻게 대꾸할지 몰라 머뭇댔다. 고작 생각해낸 게 그녀도 정말 잘한다는 멍청한 화답. 그녀는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뭘 잘하냐고 캐묻는다. 당황하는 내 모습이 재밌는지 코 앞까지 다가와 빤히 내 눈을 바라보며 묻는다. "그냥 다". 멍청한 웃음을 지으며 얼버무리자 그녀는 그게 재밌나 보다. 그녀가 샤워하러 사라지자 사방에 널부러진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먼저 나가보겠노라 샤워부스에 대고 소리쳤다. 수증기 속 실루엣의 그녀는 잠깐만 기다리라고소리친다. 그러더니 물기만 대충 닫은 나신으로 다가와 날 꼭 껴안고 키스하는 것이다. 도의적으로 지탄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 관계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는 꽤나 달달한 것이었다.
                   
안정적인 연인 혹 섹스파트너가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이성에 대한 성적 갈망을 생각해보았다. 뉴페이스에 대한 성적 갈망. 이는 단지 낯선 성기를 받아내는 일차원적 욕망이라기 보다 날 더 원하고 날 다르게 대하고 날 다른 방식으로 취하는 낯섦에 대한 정서적인 갈구가 더 큰 것. 낯섦이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순간 또 낯섦을 갈망하게 되겠지. 하물며 필생의 이상형을 곁에 둘 수 있다 한들 낯섦에 대한 갈구가 찾아올 것임을 알기에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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