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5년 10월 22일 목요일

가든파이브 그녀

 오후 세 시. 아직 자켓을 걸치고 거리를 걷자면 열기가 느껴진다. 저만치 비상등을 켜고 정차해 있는 그녀의 차가 보였다. 다가가자 차창 너머로 어서 타라는 외마디. 날 반기는 그녀의 표정은 인상만큼이나 냉랭한 것이었지만 굳이 행선지를 말하지 않아도 어디로 향해야 할 지 아는 그녀가 불편하지 않았다.
 요즘 벌이가 어떻냐는 그녀. 하긴 신문이고 뉴스고 우리 업계 걱정을 다 해주는 통에 이런 얘기를 듣는 것도 익숙해진다. 대충 얼버무리려는데 내 반응이 방어적이라 느꼈는지 농이라고 부연한다. 그러더니 호텔로 가야할지 모텔로 가야할지 내 재정상태를 고려해주려는 것이라며 웃어넘기는 그녀. 더 당황스러웠지며 얼마나 솔직하게 대답해야할까 망설여졌지만 지나치게 솔직한 답이 나오고 말았다, 웬만큼 좋은 모텔이 호텔보다 나으면 나았기에 비용대비 호텔을 선호하지 않지만 모텔을 택하는 내 결정이 그녀를 얼마나 귀하게 대하나 처우로 간주된다면 호텔로 가자고.
 말 없이 몇 분을 운전하던 그녀는 가락시장역 유흥가 안 어느 관광호텔 앞에 정차하더니 먼저 올라가서 객실번호를 알려달라고 이야기했다. 절묘한 선택이라 생각하며 객실을 잡는데 대실비용이 크게 비쌀 것도 없어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로비 플로어만 보자면 분명 호텔은 호텔이었는데도 말이다. 객실이 별로려나 생각했지만 막상 카드키를 대고 들어가 본 객실은 무척 양호했다. 특히 높은 층고가 마음에 들었다. 십 여분 후 그녀가 들어왔고 우리는 각자 샤워를 한 뒤 침대에 올랐다.

 다리는 그녀의 몸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것이었다. 살집이 조금 더 있는 허벅지였다면 더 관능적이었겠다만 가냘픈 발목에 좋은 비율과 피부결을 가진 그녀의 다리를 난 또 의식처럼 혀로 훑기 시작했다. 가끔 그녀의 언행에선 남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느껴졌는데 그래선지 그녀와의 섹스는 기억해두어야 할 준수사항이 많았다:그녀가 입고 있는 슬립을 벗겨서는 안되며(그녀는 조금도 배가 나오지 않았다), 목 위로는 가급적 어떠한 접촉도 없어야 하고, 콘돔 착용상태에 대해 빈번히 더블체크해야 하는 것(굳이 그녀의 주문이 아니더라도 콘돔을 어련히 착용함에도 말이다), 조금의 가학적 행위도 금지, 욕설을 하지 말 것 등.
 수 많은 유념사항이 존재함에도 그녀는 분명 섹스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특히 그녀는 깊고 묵진한 삽입을 음미라도 하듯 천천히 받아내는걸 즐겼는데 그렇게 여유로운 탐미적 섹스를 추종하면서도 얕은 질을 갖고 있는 그녀는 내 성기 끝이 자궁벽에 닿을 때면 빛의 속도로 날 밀쳐내곤 했다.
 그렇게 정사를 한 시간 남짓 나눴을까. 그녀의 배에서 연신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아 뭘 먹어야겠다며 룸서비스 메뉴를 보기 시작했는데 부끄러움이나 주저 없이 얘기하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화장실로 사라져 양치와 샤워를 마친 그녀가 식사 후 바로 눕기 거북하다길래 내 성기를 꽂은 채 앉아있으라고 했다. 움직여야하지 않냐며 싫다는 그녀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그냥 앉아있으라 청하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잔뜩 발기한 내 성기 위에 러브젤을 도포하더니 냉큼 앉았다. 그리고 족히 십분을 미동조차 없이 앉아있길래 아무 느낌 없어서 그런거냐고 웃으며 묻자 그녀는 몽둥이 하나 가득 담아놓고 아무 느낌 없는게 말이 되냐며 웃음을 흘겼다.
 뻔한 대화가 오가고 초저녁까지 서로를 맹렬히 탐했지만 그녀는 내가 왜 또 사정없는 섹스를 하는지, 그 이유를 자기자신에게서 찾으려는 말을 건넸다. 그런거 아니라고 답할 뿐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기엔 내가 너무 지쳤다.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자는 그녀는 나더러 먼저 퇴실하란다.
바보같은 어조로 연기하듯 내가 부끄럽냐고 묻자 그녀가 이번만큼은 가장 화사한 미소를 보여줬다. 집으로 돌아오며 지난 번 그녀와 만났을 때 내가 왜 더 이상 그녀와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이유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녀의 냉소적 태도 때문도, 잡다하게 많은 규칙 때문도, 서로 맞지 않는 대화 코드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의 게걸스러운 신음소리가 무척 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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