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5년 10월 15일 목요일

두뇌게임


 쉴 새 없이 조잘대던 그녀가 잠자코 품에 안겨 호흡을 가다듬더니 무념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역시 수다스러운 입을 닫게 만들기엔 좆방망이가 약이란 우스꽝스러운 생각, 그리고 그녀의 오피스텔에 들르기 전 데이트를 마치고 수서동 집까지 데려다준 S, 귀가하거든 어떤 야식을 먹을까 등을 떠올려봤다.
아마 그녀도 내 멍한 모습에서 무념의 상태를 짐작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니, 그녀 역시 나처럼 오만가지 잡념에 빠져있으리라.

 고약한 버릇이다.
정사를 마치고 여자가 내 품에 안겨있을 때면 생각할 꺼리를 만들려 애쓰는 것.
오늘도 엉뚱한 상상을 멈출 수가 없다.

 고이 안긴 그녀가 심근경색 따위로 급사에 이른다면 어떻게 이 현장을 경찰에게 설명해야할 것인가? 만약 그들이 타살에 혐의를 두고 날 참고인 신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한다면 어떻게 그들을 납득시켜야 하며 또 내 주변에서 이 상황에 대해 말이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조금 더 나아가는 상상의 나래.
그녀의 요구로 관계 중 가볍게 그녀의 목을 조르다가 호흡장애 등으로 그녀가 돌연사했을 때 과실치사가 아닌 상해치사 혹 살인죄로 공소되면 내 결백을 입증할 방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법리적으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급기야 상상은 극단에 이르렀다.
그녀가 끝 없이 늘어놓는 연예계 가쉽을 듣다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그녀를 살해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완전범죄가 가능할지 상상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그녀와 내가 만났다는 사실, 그녀의 오피스텔로 함께 들어갔다는 사실은 통신조회와 기지국 추적, 엘리베이터 CCTV 등으로 모두 드러날 것이다. 방법이 있다면 그녀와 내가 만났고 내가 그녀의 스튜디오를 나서는 순간까지도 그녀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갑자기 종적을 감춰 실종상태를 만드는 것 뿐. 내가 귀가하는 모습을 엘리베이터 CCTV에 담은 뒤 그녀는 불상의 일시에 CCTV가 없는 오피스텔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가 실종상태라면 내게 심증은 가되 살해혐의로 기소하기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폭행전력은 물론 어떠한 전과도 없고 신원이나 사회적 신분이 확실해 살해동기를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다만 이를 위해선 시신을 완벽히 처리해야 하는데 사체유기로 의심받도록 짐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을 찍혀서는 안되니 결국 그녀의 스튜디오 안에서 유기가 편하도록 사체훼손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릇. 경찰은 시신 없는 살인사건을 경계할테니 그녀의 스튜디오를 샅샅이 뒤엎어 루미놀 반응을 검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의 혈흔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얘긴데 그러자면 커다란 비닐장판을 깔아놓고 절단해야하고. 비닐장판을 사러 나갈 순 없으니 뭘로 대체하지? 고작해봐야 부엌칼 하나 간신히 갖춰놓고 사는 여자의 집에서 어떻게 예기를 구해 사체를 절단할 것인가.

 "무슨 생각해?"

 꼬리에 꼬리를 이은 고민에 빠져 있는데, 그녀가 적막을 못견디겠던지 말을 걸었다.
 '응, 너 죽이면 어떻게 완전범죄에 이를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있었어.'라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

"그냥 아무 생각 안 했어"

"그래? 출근하려면 몇 시에 일어나? 보통?" 아, 큐 싸인이다. 이제 집에 가도 좋다는 얘기, 아니 볼 일 다봤으니 제발 집으로 돌아가달라는 얘기다.

 경찰병원역에서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라 난 또 미진했던 완전범죄 트릭을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면모가 드문 그녀들과의 섹스에선 상상기반의 두뇌게임이라도 하고 있지 않다면 견디기 힘든 공허함이 찾아오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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