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5년 6월 15일 월요일
강화도 탈출기: 가족여행 급습
이성과 둘만의 여행이랄 만한 걸 가본 경험이 없음에도 내게 을왕리, 강화도, 대부도, 정동진 따위의 여행지는 막연히 가본 적 있는 것만 같은 익숙한 지명이다.
지난 토요일 그녀는 가족과 강화도 어느 펜션으로 1박 여행을 간다고 했다. 야음을 틈타 몰래 급습하겠노라 농을 던지자 진짜 올 수 있겠냐는 반문에 진심이 담겨있었다. 네비게이션 앱으로 소요시간을 검색하자 한 시간 반 남짓, 충분히 오갈만 한 거리라는 생각과 아주 부담 없는 거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상존했다. 그리고 금요일 밤 독신친구들과 진탕 술을 마시고 토요일 종일 숙취와 씨름하다가 정신을 차린건 오후 5시. 막상 한 시간 반을 달려 강화도까지 달릴 생각을 하니 귀찮은 마음도 들었다. 성욕이 동하지도 않았고 설사 그녀 가족 몰래 그녀를 안을 수 있다고 해도 우리 관계는 전적으로 섹스에만 목적성이 고착된 것으로 규정하기에 우린 너무도 친밀한 사이였다. 결국 뱉은 말에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교통체증을 피해 느지막히 출발해야겠노라 마음 먹었다.
밤 열 시에 이른 시각 펜션을 나와 날 기다릴 그녀와 바닷가에서 간단히 한 잔 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몇 가지 챙겨 차에 시동을 걸었고 그녀는 가족들과 배드민턴을 치는 중이라며 해맑은 안부를 전해왔다. 올림픽대로를 하염없이 내달리다가 어느 순간 김포를 지나쳤고 구비구비 국도를 이십 여 분 또 내달리고나니 칠흑 같은 밤바다가 도로 한 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펜션 밖 흔들의자에서 날 기다리던 그녀를 만나 담배를 나눠피우며 바닷내음 머금은 공기로 폐를 한가득 채우자 갑자기 여행 온 기분이 물씬 드는 것이 여간 유쾌한 것이었다. 식구들은 벌써 잠에 골아떨어졌다는 말에 내심 쾌재를 불렀지만 객실 맨구석에 위치했다는 그녀의 방까지 들키지 않고 몰래 갈 수 있을까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굳게 닫힌 방문들을 지나치며 기우였음에 안도했다.
그녀는 이미 술상을 봐놨고 그녀 방 바깥에 딸린 테라스로 피신한 우린 와인병을 기울이며 속삭이듯 대화를 나눴다. 근래 우리 술자리는 둘만의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석한 일이 대부분이었음에 우린 다른 때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 친밀감은 이내 술이 부족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다시 까치걸음으로 천천히 펜션 객실을 나선 우리는 십 여 분을 꼬박 걸어 편의점에 도착했고 술 두 병과 하겐다즈 몇 스쿱을 샀다. 그리고 다시 은밀하게 돌아와 다시 술잔을 기울이던 시간은 벌써 새벽 세 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녀가 챙겨놓은 해산물과 사시미를 안주 삼아 두 병을 모두 비우고 그녀가 방문을 걸어잠그는 행동을 신호삼아 우린 서로를 훌훌 벗겨버리며 안기 시작했다. 구석방이라 침대가 없었는데 마지막 방바닥 섹스가 언제였던가 잠시 떠올려보았지만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취기 때문인지 그녀는 평소보다 과감했고 악 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신음이 커질 때마다 스스로 입을 막는 그녀의 깨끗한 손가락이 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난 극도로 흥분했다. 그럼에도 새어나는 신음이 커질 때면 내 손을 더해 그녀의 입을 막았고 시선은 방문에 고정되어 인기척에 촉각을 세우느라 스릴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격정의 몸짓이 지나가고 그녀를 품에 안아 다정하게 누워있자니 이 아늑한 기분이란 부담스러울 정도로 편안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린 깜빡 잠들었고 얕은 잠에서 깨어 시계를 올려보자 새벽 다섯 시를 지나고 있는 시간에 허겁지겁 그녀를 깨웠다. 그녀도 내심 불안했었는지 서둘러 날 보낼 채비를 했다. 옷을 입고 소지품을 챙기고 전화기를 찾아보는데 무엇 하나 숨겨질 크기의 방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차에 두고 왔겠거니 여기고 또 다시 까치발로 그녀와 현관에서 작별했다. 그녀의 배웅을 뒤로 하고 차로 돌아왔는데 정작 차에 전화기가 없는 것이다. 당장 오후 두어 시가 되면 서울로 돌아올 그녀이기에 평소 같으면 그녀가 어련히 전화를 맡아두었다가 돌려주겠거니 생각했지만 문제는 당장 네비게이션앱 없이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 차에 내장된 네비게이션은 그 악명 높은 벤츠코리아 네비게이션 아니던가. 더군다나 구매 후로 단 한번도 네비게이션 맵 DVD를 바꾼 적이 없어 도움이 될 리도 없었다. 혹시 그녀가 내 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려하지 않을까 테라스 근처에서 그녀를 기다려보지만 차를 샅샅이 수색하느라, 두고온건 아닌지 싶어 편의점을 다녀오느라 지나버린 이십 분 사이에 그녀의 방 조명은 꺼져있었다.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의 가족이 잠들어 있을 펜션 유닛의 방문을 두드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혹시라도 그녀가 내다볼까 테라스 아래 편에서 기다리려는데 공교롭게도 펜션 주인이 머무는 유닛인 그곳에서는 꼭두새벽까지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운전석에 앉아 잠을 청해보려니 실소 밖에 나오지 않았다.
피곤하긴 했는지 결국 잠이 들긴 들었다, 번뜩 눈이 떠져 시계를 보니 아침 아홉 시 반, 아침이 밝았어도 고민은 여전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녀를 불러낸단 말인가, 2층 맨구석에 있는 그녀가 우연히 테라스로 나올 확률은 얼마나 낮겠으며 전화기가 없으니 그녀의 번호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고 내 전화로 발신을 하자니 진작에 배터리가 없어 꺼졌을 상황이라 도무지 답이 없었다. 그러다 묘안이 떠오른게 그녀의 가족이 RV인 그녀의 차(주크)로 강화도까지 왔으며 자기가 운전 당번이라며 투덜댄 얘기가 떠올라 주차문제로 찾아온 펜션관계자 행세를 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할 말을 단단히 생각해놓고 벨을 누른 시간이 거의 오전 열 시, 연기연습과는 무관하게도 현관문을 열은 건 그녀였다. 그녀가 날 마주한 눈빛은 세상에서 가장 당혹스럽고 사태파악이 안되는 눈빛이었다. 날 따라 밑으로 내려온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녀는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냥 벨을 누르지 그랬냐는 말에 곤란한 상황은 차치하고서라도 새벽부터 온 식구를 깨울 수 없었다고 항변하자 그녀는 내가 귀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착하다고 자꾸 얘기한다. 방에서 찾아온 전화기를 건네받고 난 그제서야 강화도를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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