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섹스 중독의 다른 말


 2004년으로 기억한다.
 절친이 늦은 나이 육군 현역 사병으로 입영을 앞둔 전야를 맞이하고 있었고 우리 고교동창들은 그를 위해 조촐한 환송회를 치뤄주기로 했다.
 함께 대입 반수를 감행하던 90년대 막바지의 반 년 남짓, 심정적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그의 우정을 생각하면 난 반드시 참석하여 그를 위로해주어야 마땅했거늘 당시 침대로 끌어들이려 노력하던 1년차 아산병원 간호사 아가씨는 공교롭게도 환송회 한 시간 전 만나자며 급한 전갈을 줬고, 난 어머니 차를 빌려 그녀를 픽업하러 갔다.

 모든걸 서둘러 진행하면 늦게라도 친구의 환송회에 참석할 수 있겠다는 일념에 난 그녀와 강남역 어느 바에서 술 한잔을 급히 털어넣고 근처 모텔로 향했다. 나 역시 시험준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 시기였기에 그 정도 우정에의 결례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라 합리화했고, 간호사와의 섹스를 모든 남성이 한 번 쯤 경험해보고픈 판타지로 만들어준 포르노에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동성친구가 거의 없을 것 같은 타입이었다. 이제 막 사회 초년병인 그녀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 것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지나치게 높은 자의식과 세인들이 간호조무사와 간호사를 구별치 못함에 신촌골 간호대를 졸업한 전문인력으로서의 피해의식 따위로 점철된, 소위 피곤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녀와 객실에 들어선 무렵부터 친구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로 내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진동음을 토해냈지만 일단 그녀와 살을 섞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그간의 노고를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는 본전심리로 섹스에 몰두했다, 썩 합이 맞지 않는 섹스였음에도 말이다.

 숨을 돌리며 나란히 누워 대화하는 시간은 인고의 순간이었다. 그녀는 수간호사에의 불만과 정신적, 육체적으로 소진되어가는 고충 등을 늘어놓기 바빴는데 그녀의 모든 얘기에는 '나'만 있을 뿐 난 진심도 아닌 위로와 격려의 말 외엔 건넬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녀의 지나친 자의식을 힐난할 수도 없는게 그녀는 자신만이 온전한 주인공인 시간을 염원했기에 일종의 거래로써 나와 자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입을 닫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육체를 더 탐닉했고 아쉬울 것 없는 섹스였다는 생각이 들고서야  그녀를 택시에 태워 귀가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내게 연락치 않는 친구들에게 뒤늦은 전화를 했지만 주도자가 잠수를 타버린 조촐한 환송회는 일찍 종료된 상황이었다.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했던 친구에게 드는 죄책감은 자기혐오로 이어졌고 섹스중독인 내 자신을 책망해보았지만 사실 섹스중독이란 어휘 자체가 내 무책임함을 무마키 위한 변명이란걸 알고 있기에 더 큰 자괴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함에 전화해본 친구 녀석은 사과하는 내게 미안할 것 없다며 잘 다녀오겠노라 담담하고 말해주었지만 도리어 내가 위로받는 상황이 되어버린 그 순간이 더 미안한 것이었다.

 그가 제대한 이후로도 그와 종종 만남의 시간을 가졌지만 큰 죄책감은 예전처럼 그를 살갑게 대하기에 낯이 없는 뻔뻔함으로 여겨져 어색하기 짝 없는 친구관계가 된 것 같았다.

 지금도 진솔했던 그와의 우정을 아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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