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4년 9월 10일 수요일

Jazz, weed and sex


 역삼동 힐튼제과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면 그녀가 살던 빌라가 나타났다. 건물은 초라하기 그지 없어 보이는 외관을 지녔지만 유명 재즈 색소포니스트였던 그녀의 세련된 취향이 곳곳에 묻어나는 그녀의 집 안 만큼은 딤라잇이 잘 어울리는 세련되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성공한 중장년의 기업인, 전문직들을 상대로 색소폰 교습반을 운영하던 그녀는 강습이 끝나고 나면 으레 와인바로 이어지는 수업 뒷풀이의 루틴 탓에 야행성 생활리듬을 갖고 있었고 그 덕분에 난 늦은 귀가 중에라도 그녀에게 부담없이 연락하기 어렵지 않았다.

 유학시절 구매했던 희귀 재즈앨범  두 어 장과 와인 한 병을 들고 그녀의 집을 찾을 때면 그녀는 까나페를 만들어놓고 날 기다리곤 했는데 우린 단지 재즈와 와인이 함께 하는 평온한 휴식을 즐길 요량으로 만날 때조차 결국 삼십 분 후엔 둘 다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몸을 섞고 있는 우리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와의 파국은 서로에게 육체적으로 시들해진 것보다 순전히 내 멍청한 실수 때문이었다.

 음악인들은 마리화나를 '책 본다'라고 표현했는데 그녀는 종종 지인들을 통해 잘 말아진 weed를 몇 개피 얻어와 나와 함께 나눠피우곤 했다. 그날도 우린 위드에 취한 채 격렬한 정사를 나눴고 섹스 후 밀려오는 허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차 그녀는 내게 먹거리 조금과 와인을 사오라며 졸라댔다. 알겠노라 대답했지만 여전히 high해서 제 정신이 아니었던 난 그 길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 그대로 잠에 빠지고 만 것이었다.

 이른 아침,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난 전화기에 답지한 십 수통의 부재중전화와 문자메세지를 보고서 내 실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문자 메세지는 내게 유부남이냐며 추궁하는 내용과 힐난이 담겨있었고 난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하나 고민하다가 그냥(늘 그랬듯) 외면하는 방편을 택했다. 그녀 역시 더 이상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가끔 포탈사이트에서 검색어로 그녀의 업계 예명을 쳐본다. 뉴올리언스에서 색소폰 세션 활동을 몇 년 해보고 싶다던 그녀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언젠가 다시 그녀를 검색해보았을 때 재즈의 본고장에서 세션 활동을 하는 미녀 색소포니스트의 사진과 소식이 게시되길 기원한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넘게 지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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