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4년 9월 3일 수요일

민낯


 부서에서 유일한 미혼자라 강제할당 받은 7월 중순 때이른 휴가,
시청 앞 엄청난 교통체증을 뚫고 그녀를 기다렸다. 정차가 금지된 구간이라 몇 차례 선회한 끝에 내 차로 걸어오는 그녀가 보였다.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조수석에 오르는 그녀의 늘씬한 각선미에 눈길이 쏠렸다. 저리도 길고 예쁜 다리를 가졌으면서 험상궂은 플랫폼힐을 신었을까 탄식이 절로 나온다.

 가로수길로 향했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돌려달라고 간청했다는 셀린느 백 얘기를 꺼내며 그를 비웃는 그녀, 공감의 제스처라도 보여야 할 것만 같아 조롱에 동참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긴 여지껏 해본 고가의 선물이라곤 결혼을 생각했던 연인에게 버버리 백 하나가 전부였던 내가 비웃을 만 한 호의는 아니긴 하다. 어느덧 가로수길 이면도로에 들어설 무렵 꽉 막힌 도로사정에 그녀는 질겁했는지 그냥 다른데로 가잔다. 나 역시 조금의 고민도 없었다, 차를 돌려 도곡동으로 향했다. 다시 이삼십 분이 걸려서야 도착했지만 데이트의 모양새를 취한 채 여성과 동네를 배회한다는 신선함은 실로 오랜만인 것이었다. 170cm 초, 중반대의 장신이 까마득히 높은 힐까지 올라타니 나란히 걷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지만 행인들이 그녀의 실루엣을 훑는 시선은 내 과시욕과 접점이 닿아있었다.

 톨릭스에서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빙수를 먹고서야 그녀는 피곤이 몰려왔나보다. 차에 오른 그녀는 행선지를 말하지 않는다. 내가 알아서 모텔로 향하길 채근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날따라 난 휴가기분을 내고 싶었는지 와인이나 한잔하자고 했다. 답답하게 군다고 생각했나보다. 한숨을 푹 쉰 그녀는 왕십리 근처에 괜찮은 모텔이 있다며 그리로 가잔다. 하긴 왕십리면 출근하는 그녀를 데려다주기에 편하겠단 생각을 하며 왕십리를 향했다.

 모델급 사이즈만큼이나 그녀의 얼굴은 분명 미인이다, 기가 세어보이는 느낌을 주긴 했지만 말이다. 막상 그녀의 나신을 대하자 푹푹 찌는 여름날 굳이 그녀가 왜 가디건을 걸쳐입었는지 조금 알 수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그녀에게 살집이 드러나는 유일한 신체부위가 상완이었는데, 두꺼운 살집이라기 보다 운동 부족으로 탄력을 잃은 살집이었다. 그러나 내가 상완에 페티시즘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눈에 거슬리지도, 밟히지도 않았다.

 연신 발기한 내 페니스를 크다며 쓰다듬는 그녀. 입으로 가져가는 그녀를 살짝 제지했다. 무안할지 모를 그녀를 끌어올려 키스했다. 평범한 느낌을 주는 키스였다. 그렇게 엉기어 한참 전희를 즐기다가 그녀는 내 머리를 자기 다리 사이로 끌어들인다. 깨끗히 왁싱한 민보지가 보였다. 언제 왁싱했냐고 묻자 한 달 정도 되었단다. 한 달 사이 거의 음모가 자라지 않았다며 신기해하자 그녀는 남자의 왁싱으로 화제를 돌린다. 자기는 왁싱한 남자가 싫단다. 자기 단골샵 관리사가 말해주기를 남자는 깨끗하게 왁싱하기 위해 페니스를 발기시켜야 하는데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남자가 싫다는 것이다. 정리된 내 음모를 두고 샵에서 했냐고 묻기에 직접 트림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웃는다, 스스로 가위와 면도기로 제모하는 광경을 상상하니 별로란다.

 에어컨을 껐는데도 자꾸 그녀는 쉬이 마른다. 애무가 부족했나 생각하며 그녀의 수원을 자극하는 것도 잠시, 또 매말라간다. 원래 물이 없는 편이냐고 묻자 전혀 아니란다. 피곤해서 그런거 같다며 내 품을 파고든 그녀는 잠을 청한다. 정체구간에서 몇 시간 운전한 탓에 나도 피곤이 몰려왔다. 누군가와 한 침대에서 잠을 거의 자지 못하는 편임에도 금방 잠에 들었다.

 아침 6시 반, 그녀의 시끄러운 전화기 알람에 잠에서 깼다. 몇 시에 나가면 되겠냐고 그녀에게 속삭이자 아직 한참 여유있다며 내 품을 다시 파고든다. 그녀의 젖가슴이 느껴지자 피곤에 질식됐던 성욕이 생생히 살아났다. 살살 유두를 돌려 만지며 발기시키고 어깨죽지부터 더듬기 시작하자 그녀의 숨결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꼬박 두시간을 욕정에 걸신들린 남녀처럼 섹스를 했다. 그녀 말대로 그녀는 물 많은 여자였다. 손길 한 번에, 삽입 한 번에 보짓물이 손가락과 내 페니스에 잔뜩 베어나오는 그녀였다. 오래 잊고있던 아침섹스의 만족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녀 역시 당장의 욕정에 눈이 멀어 지각을 불사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나보다 더 느듯한 태도다.

 그녀와 오래 만나게 될 줄 알았다.
 정확히 일주일 후 그녀와 왕십리 모텔에서 재회했고 몇 시간의 정사 뒤 그녀는 내 전화기를 샤워부스에 들어간 내 부재를 틈타 열람해보았나보다. 침대가로 돌아오자 그녀는 내게 보란 듯 전화기를 스탠드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그녀가 아무 말이 없기에 변명의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긴 그녀가 어떤 내용까지 보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핑계를 댈 수도 없었다.

 차에서 늘 수다스럽던 그녀의 침묵에 너스레를 떨만큼 내 언변이 뛰어나지 않기에 조용히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어떤 내용을 보았 건 내 민낯을 접한 그녀에게 모든 결정권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도 집에 당도해 잠자리에 들자 그녀의 "잘 지내^^"라는 간단한 문자가 도착했다.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내 추악한 모습을 들켰다는 수치심이 많이 들지도 않았다. 그냥 아쉬울 뿐이었다, 그녀와 영영 몸을 섞을 수 없음과 '난 왜 이럴까?' 정도의 미약한 자괴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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