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4년 5월 22일 목요일

게임의 법칙


 보스와 줄리아나의 양강체제를 이루던 시절, 보스에서 만난 그녀는 은근한 호감을 계속 표하지만 당일만큼은 자신을 허락해선 안된다는 철칙의 전형적 소유자였다. 딱히 그녀가 내 취향이었던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두번째 만남이 될 애프터에서 만큼은 그녀를 취할 수 있다는 확신에 그녀의 연락처를 받아두고 다음날 만났다.
강남역에서 우린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그녀는 날 허락할 구실이라도 만들겠다는 심산인지 술잔을 입에 털어내기 바빴다. 나 역시 취기가 올라올수록 그녀를 칭찬하고 그녀가 신이 나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얘기를 들어주고 은근한 스킨쉽을 시도하며 다음 단계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 뻔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지독히 한심하게 느껴지며 술이 깨는 것이었다.

지겨웠다, 게임의 법칙을 답습하는 매순간이.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기 바쁜 그녀를 바라보며 '내가 이렇게까지 해가며 그녀와의 섹스에 집착해야 하는가?'란 회의감이 찾아오자 방금 전까진 반반해보이던 그녀의 얼굴도 평범해보이기 그지 없게 느껴졌고 취기가 오를수록 유쾌하게 느껴지던 그녀의 성격도 한없이 유치하고 철없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계산을 하고 술집을 나서자 그녀는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다는 듯 더 아늑한 곳(?)으로 자신을 이끄는 말을 기다리며 내 손을 붙들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회의감에 압도된 난 어떻게 그녀에게 상처주지 않고 자연스레 귀가시킬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긴 강남역에 숙박업소가 밀집한 곳이라고 해봐야 국기원 쪽 일대와 그 건너 블럭임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난 타워레코드 방면으로 그녀를 이끌어 모텔을 찾는 시늉을 했고 점차 걷는 거리가 누적되자 "개똥도 약으로 쓰려면 못찾는다더니..."류의 농을 던져가며 그녀를 달랬다. 어느새 우리 대화는 부쩍 줄었고 잔뜩 지쳐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널 집에 보내줘야 하나보다며 택시를 잡아 태웠다.

 뭐든지 타이밍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원나잇의 공식에 따라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도 상대여성의 매력도와는 무관하게 단지 내 기분에 따라 그녀를 취하기도, 떠나보내기도 하니 말이다. 하루에도 절박함과 냉랭함을 순식간에 오가는 사람의 기분이 곧 인연일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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