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원나잇남의 자존심


 2005년 즈음,
 선릉 한 모텔방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뜨거운 키스가 시작되었다.
 격정적으로 서로를 더듬으며 서로 한꺼풀씩 벗겨내다가 한 손은 어느새 그녀의 팬티 안으로 들어갔고 이미 젖을대로 젖은 그녀는 내 팬티를 순식간에 벗겨내고 스탠드테이블에 놓인 콘돔을 능숙하게 씌웠다.
 서두르고 싶지 않았기에 가슴을 어루만지다가 그녀의 다리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그러자 그녀의 완강한 저항에 샤워안한 것 때문이냐고 묻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오랄은 내키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환상적인 오랄을 해주던 남자친구 생각이라도 나기에 그런거냐며 농을 던지자 그녀는 갑작스레 눈물을 보인다. 하긴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워 복수심에 나를 만나 술을 마신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기도 했고 괜히 남자친구 얘기를 꺼냈나 싶은 후회뿐이었다.
 위로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내 품으로 이끌어보지만 울음은 커지고 내게서 더 멀어지는 그녀. 남자친구 때문에 슬프다는 애를 데리고 난 뭐하는 짓거리인가 자괴감이 찾아오고 차라리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게 내버려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그녀 옆에 나란히 누워 담배를 입에 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다 말기를 몇차례, 그냥 부담갖지 말고 이야기하라며 그녀를 다독이자 그녀는 어렵사리 말문을 떼며 "도저히 안되겠어요, 미안해요... 나도 여기까지 와놓고 이러는게 웃긴거 알아요. 그런데 정말 쉽지 않네요."라 말했다. 그리고는 또 울기 시작한다.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말을 했지만 그녀는 극구 사양하더니 끝내 택시를 잡아탔다. 운전대를 잡고 집을 향하며 나도 상념에 빠지기 시작했다. 오랜 연인과 헤어지고 처음 다른 이성과 잠자리할 때 뒤척임조차 생경하기에 그 이질감을 견디기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일주일 후쯤 다시 그녀에게서 술 한잔하겠냐며 연락이 왔고 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지만 답을 주지 않았다. 결혼을 생각했던 연인과 이별하고 처음 몸을 섞었던 신촌 그녀를 떠올렸다. 우습게도 난 맹랑한 복수심에 여자친구와 자주 가던 이대 옆 피아노모텔로 그녀를 이끌었고 우리가 섹스했다는 것 빼고는 아무 기억이 없는 공허한 상대로 남은 신촌 그녀였다.
 난 선릉남이 되고 싶진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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