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섹스 후 서로 연락 없던 시기를 수차례 반복하고도 D는 섹스로 소통하는 관계에 통달한 사람마냥 내 갑작스런 연락에도 몸을 섞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어쩌면 오늘 당장 그녀에게 연락을 한다해도 그녀는 어떤 말도 필요없다는 듯 따듯한 포옹으로 날 보듬어 줄 것 같은 사람이다.
그녀는 아픔이 많은 사람이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수녀가 되려했지만 어린 나이에 암이 발병해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로 점철된 투병생활을 인고해야했고 다시 얻은 삶에 대한 감사로써 명동성당에서 반주봉사를 했다. 말 없이 내 머리칼을 쓰다듬고 제 품으로 날 꼭 안아주던 그녀에게서 난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모성애를 느꼈다. 섹스 또한 즐거웠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 없이 날 포용하는 듯한 그녀의 태도는 내게 쉬이 지겨워지는 것이었는지 철저히 내 욕망의 스케줄에 맞춰진 만남의 주기였다.
2009년 12월 31일, 혼자 시간을 보내기 싫었던 난 몇 개월만에 연락을 했고 그녀가 살던 수지로 차를 몰았다. 모텔로 들어서서 허겁지겁 욕정을 채우고서야 밀린 대화를 나눴지만 그녀는 연락 없던 몇 개월에 대한 어떤 설명도 내게 요구하지 않았다. 몇시간 후에 명동성당으로 가봐야한다는 그녀를 몇 번 더 취하고서야 난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로 옷을 주섬주섬 입고서 창 밖을 바라보니 눈이 온세상을 소복하게 뒤덮었다. 아름답다는 생각에 젖어있는 것도 찰나, 서울까지 어떻게 운전해서 가나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 걱정스러운 얼굴에 그녀는 안데려다줘도 된다며 택시를 타겠다며 예의 그 포근한 표정으로 말한다. 고맙다는 생각을 하기엔 너무도 각박한 심리였는지 난 과연 집까지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에 빠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를 보내고 눈길을 천천히 달렸지만 내 차는 한번 180도 빙글 돌았고 다행히 반대차선을 주행 중인 차량이 없었기에 사고를 모면할 수 있었다. 결국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처음 장착해보는 체인과 한참을 씨름하고서야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었다.
귀가하고서 D와 몇 번 문자메세지로 안부를 나눴지만 또 어느 순간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그녀에게 답을 못주며 연락이 끊겼다. 아직도 가끔 내 허전한 감정을 섹스로 해소하고싶을 때 이런 미안한 감정을 애써 잊고서 그녀에게 연락하고 싶기도 하다.
제발 안그랬으면 좋겠다,
안그래야겠다.
사족.
자동차 동호회에서 활동할 정도로 차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내 차 엔진소리만 듣고도 트렁크리드에 붙어있는 AMG엠블럼이 가짜임을 알아챈 유일한 사람이었다. 6기통 엔진소리가 아니라는 말 한마디에 난 한 없이 부끄러워져 며칠 뒤 딜러에게 연락해 원래 엠블럼으로 원상복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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