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년 6월, 미육군의 시책으로 모든 미육군장병은 soft cap에서 검정 베레모로 전면적인 근무 착용모를 전환하는 행사를 가졌었다. 당시 이등병이었던 난 카투사 선임들에게는 이른바 애 먹이는 막내였지만 주말마다 (집에서 주말을 즐기는 카투사들과는 달리) 막사를 지키며 중대 미군병사들과 만취파티를 즐기는 party animal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당시 내 룸메이트는 같은 주특기, 같은 섹션 근무 그리고 둘 다 훈련소를 마치고 들어온 첫 자대가 우리 부대였던 미군 신병으로 190cm가 넘는 키에 110kg정도 나가는 거구의 이태리계 미국인이었다. 아직까지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단짝으로 지내던 우리를 두고 사람들은 톰과 제리 같다며 놀려대기 일쑤였지만 우리는 나란히 자기 침대에 누워 밤새도록 귀신얘기, 가족사, 상관 험담 등을 소재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사이 좋은 친구였다.
그런 그가 한달 간 그의 고향이었던 뉴욕으로 휴가를 가게 되었고 내가 꽤나 풀이 죽어 보였는지 중대 미군사병들은 금요일 밤, 토요일 밤이면 내 방문을 두드리며 술을 권하며 날 살뜰히 챙겨주던 나날이 거듭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S3에 근무하는 PFC Wright란 여군이 미국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자 중대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재밌는 사람이란 풍문만 듣었던 그녀였지만 막상 그녀와 마주하게 된 막사 파티에서 그녀는 정말 까맣고, 마르고, 키가 큰 무서운 흑인누나 같은 인상이었다. 그렇지만 다들 취기가 거나하게 오르자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그녀의 주도 하에 스낵포인트에서 각종 주류를 쓸어담아 막사 day room과 몇 몇 사병들의 방은 엉망으로 취한 중대원들이 차곡차곡 널부러져 가던 양상이었다.
난 비교적 말짱한 상태에서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더 술을 마시기는 무리일 것 같다고 말하려 문을 열자 뜻 밖에도 Wright가 서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휴가 가있는 동안 베레 세레모니를 하는 통에 베레를 쓰는 정확한 방법을 모르겠다며 육군차원의 착용 메모렌덤이 내려왔다면 볼 수 있는지 물어보려 왔다는 것이다.
사무실에 있기에 현재 갖고있지는 않았지만 난 내가 기억하는 범위에서 그녀에게 최대한 설명해주었다, 베레의 옆선이 지면에 평행이 되게 착용을 하고 물을 먹인 면도기로 베레 표면을 쉐이브하여 보푸라기를 제거하라는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그녀는 내 베레를 쓴 채 내게 바로 모양을 잡아달라며 한참을 시간을 보냈고 별 시덥지 않은 그녀의 의문점이 거듭될수록 그녀가 왜 내 방을 찾아왔는지 난 눈치채기 시작했다.
아마 그녀가 코케이시안이었다면 그녀의 의도에 난 충실히 부응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인종차별주의자인지 이 색다른 상황을 충분히 즐겨볼 생각보단 어떻게 모면할까를 고민했다. 시덥지 않은 질문에 난 꼬박꼬박 성실히 답해주며 난 눈치코치 없는 멍청이 행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playing dumb). 결국 그녀도 질문꺼리조차 더 남은게 없었는지 이제는 내게 베레를 씌여주고 은근한 스킨쉽을 시도하는 것이다. 난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병신으로 행세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자 그녀는 이제 지쳤는지 잘 자라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보름 정도가 더 지나 내 방짝이 휴가에서 돌아오고 그에게 이 사건을 전하며 둘이 한참을 낄낄댔다. 그리고 그 주말 내 방짝은 Wright의 방에서 자고왔다. amazing한 그녀였다기에 아쉬움도 남았지만 혹시 join이라도 하랄까봐 놀려먹기만 했다. 약 6년 후 내 거구의 백인 방짝은 흑인여성과 interracial marriage를 하게 된다. 아, 물론 Wright는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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