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3년 9월 9일 월요일

화무십일홍: 아름다움의 역설


 내가 그녀를 부르는 예명은 '맛지은'이었다.
 그녀는 늘씬한 미모만큼이나 성감과 섹스몰입도가 뛰어난, 아주 '맛있는' 여자였다.

 모델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모델 일을 하던 동갑내기 그녀는 털털한 성격만큼이나 "넌 내가 자주는걸 고맙게 생각해야돼!"란 말을 호탕한 웃음과 함께 입에 달고살던 미녀였고 유쾌한 그녀가 친숙해지는 만큼 상봉동이라는 너무도 낯선 그녀의 동네는 우리의 접선지로 어느덧 내게 친숙한 지명이 되었다.

 비록 체중관리로 안주를 거의 먹지 않는 그녀였지만 우리의 술자리는 언제나 권하는 술을 마다않는 나와 두주불사 그녀의 앙상블로 새벽녘까지 이어지기 마련이었고 몸을 가누기 힘들어진 채 모텔에 투숙해 한숨 자고서야 정신이 들어 창 밖에서 쏟아지는 햇살의 따스함을 한껏 느끼며 내 위에서 그녀가 펼치는 치열한 몸부림에 날 내맡기는게 우리 만남의 루틴이었다.

 그녀도, 나도, 섹스가 익숙함을 넘어 기계적이 되어가는 것을 못견뎌한 탓일까? 
 드물어지는 연락, 욕정이 엇갈리는 두어번의 타이밍, 
 불타오르던 열정이 사그라드는 시점을 넘겨내는데에는 우리 모두 서툴기 그지 없었다.
 그 누구도 작별을 고하진 않았지만 몇 차례 광란의 정사만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사이가 되었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건 오년 여가 흘러 30대 초반이 되고서였다.

 상봉동 한 술집에서 들어서자 반갑게 내게 손짓하는 그녀는 정말 많이 변해있었다.
 내 기억이 왜곡되었었나 잠깐 고민해볼 정도로 세월의 직격탄을 맞은 둣한 그녀는 피곤해보일대로 피곤한 피부와 부쩍 늘은 체중으로 애처로울 지경이었지만 예의 그 당찬 모습만큼은 그대로였다.
 술잔을 기울이며 밀린 소식을 반가이 나누던 우리, 이제는 런웨이를 내려오고 나레이터 모델 일로 생계를 잇고 있다는 그녀는 대견하다는듯 멋있어졌다고 연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술을 권한다. 여전히 유쾌하고 낙천적인 그녀의 모습이 안도되기도 했지만 눈부시게 아름답던 그녀의 한때를 기억하던 내겐 연민의 감정이 한껏 찾아왔고 혹여 내 눈빛에서라도 그걸 그녀가 읽어낼까 두려운 마음에 더욱 오버하며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또 몸을 가뉘기 힘들 정도의 취기가 우리를 찾아왔다.
 그러나 예전처럼 모텔로 향하진 않았다. 

 물론 세월의 풍파에 변해버린 그녀일지라도 여전히 매력있는 여성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일말의 연민이라도 드는 상태에서 그녀를 다시 안기에는 죄책감을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또 술을 마시며 연신 외로움을 내비친 그녀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주어 마음을 다치게 할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녀도 바보는 아니다. 술자리에 이어 침대로 이어지던 우리의 루틴이 반복되지 않음이 그녀의 자존심을 다칠 것이다. 그럼에도 난 내일의 일정을 들며 너무 아쉽다는 듯 그녀를 택시에 태운다, 그리고 나도 택시에 올랐다.

 화무십일홍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이 핀 나날이 있었기에 꽃이 진 지금이 더욱 비극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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