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3년 8월 19일 월요일

섹스의 댓가



 "오빠, 택시비 좀"

 뻔히 알고 있었다, 흘낏 본 그녀의 지갑 속엔 레슨비로 받은 모양이었던 새파란 지폐들이 가득했다는 걸.
 그녀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섹스가 끝난 후에는 무언가 바라는게 생기기 마련이었다.
 하긴 내가 그녀에게 바랬던건 섹스를 벗어나지 않았으니 그녀를 책망할 것도 없었다, 어쩌면 섹스의 댓가로 화대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했는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녀를 만나던 삼십대 초반, 난 좀 더 어린 여자를 선망하는 남자의 심리를 조금씩 깨닫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 어수룩한 언변과 허술해 보이는 행동거지에 그녀는 늘 내 머리꼭대기에서 날 조종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상 스물한살의 그녀가 깊히 감명받던 내 호의란 것은 워커힐로 드라이브를 가고, JJ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웬만한 청담동 쿠진에서 야식을 먹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신촌골에서 학생회장을 하며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며 소주를 들이붓던 그녀의 남자친구에게선 기대하기 어려운 호의였으리라.
 더군다나 S예고를 나와 신촌골 모 현악과에서 탑을 다투던 그녀의 강한 자기프라이드도 내 프로필에는 수긍할 수 있었던지 그녀는 나로부터의 어떠한 요구라도 늘 부응하는 편이었다.

 그녀의 섹스 스타일은 굉장히 열정적인 모양새를 띄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쾌락에 몰두하는 정념이라기보다 남자의 만족을 끌어내기 위한 정열일 뿐, 그녀의 격하고 과잉된 반응이 가끔은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던 하루,
 어머니가 연습실 문을 바깥에서 잠그고 하루에도 몇 시간 씩 현을 켜야했던 그녀는 어머니와 크게 다퉜는지 신촌에서 만나자며 내게 연락을 해왔고 늦은 밤, 늘 그랬듯 모텔방에서 한바탕 시끄러운 섹스를 나누고 옷을 주섬주섬 입던 나를 그녀는 뒤에서 꼭 안아왔다. 그러더니 오늘은 아침까지 같이 있어주면 안되겠냐며 말을 건네던 그녀.

 애처로운 마음이 한켠 들면서도, 조금만 그녀의 부탁이 투정으로 느껴지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뒤로 하고 자리를 박차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안하다며, 오늘만큼은 외박하기 정말 녹록치 않다며 그녀를 토닥였지만 그녀는 점점 매달린다, 집에 들어갈 수 없다며.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는 화장실로 들어가 식구들에게 어떤 핑계를 댈 지 고민하던 차, 문 너머로 그녀의 통화소리가 설피 들린다. 남자친구에게 전화한 모양이다.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검지를 세우고서 조용하라는 싸인을 보낸다.

 남자친구가 산다는 자취방 골목까지 그녀를 태워주고 집으로 오던 길, 조금 덜 미안함을 가져도 괜찮겠다는 안도감과 그녀에게서 멋대로 애처로움을 읽어낸 내가 지나치게 오만하거나 감상적인건 아니었는지 머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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