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3년 7월 8일 월요일

젊음의 행진


 어설픈 취기의 여운을 남긴 회식은 더 많은 알콜을 갈구하기보다 성욕으로 수렴하기 마련이다.

 대리운전기사와 나누는 대화의 소재는 지루할 정도로 비슷하다. 그들은 조심스럽지만 늘상 내 개인신상에 대한 끝도 없는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직업은 무언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부모님은 뭘하시는 분인지, 연봉은 얼마나 되는지.
 소재의 고답성 속에서도 난 대부분 성실히 답해준다, 과시욕임을 부인하긴 어려우리라.

 일련의 문답 후 그는 자신이 대리운전에 입문한 계기와 그간의 인생사를 열심히 이야기해준다. 귀 기울여 듣는 척 하면서도 내 시선은 스마트폰 메신저로 시시틈틈 향해 있다. 나와 잠자리를 함께 한 여성들의 메신저 블로그를 시찰 중이다. 그러다가 HK가 게시한 사진이 두어 주 전과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출연하던 '젊음의 행진'이란 뮤지컬이 끝난 모양이다. 석별의 정을 나누는 술자리 사진으로 가득하다. HK와의 원나잇스탠드를 떠올리자니 쓴웃음이 새어나왔나보다. 30대 후반의 대리기사는 말을 멈추었고 백미러에서 우리의 눈은 마주쳤다. 그의 눈빛에는 호기심이 서려있다. 

"뭐가 그렇게 재밌으세요?"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정적이 스쳐간다.
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저씨, 발기부전제 드셔본 적 있으세요?"


입사한 지 오래지 않았던 몇 해 전, 
휴가시즌을 막 끝난 시점의 입사라 근무 초기부터 업무량은 어마어마했다. 야근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딱히 바쁠 것이 없는 날조차 정시퇴근하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나날이 계속 되고 있었다.
한쪽 모니터에는 엑셀 스프레드시트가 가득했지만 서브 모니터에는 채팅사이트 창을 한구석 띄워두고 무료함을 달래던 중  한 남성사용자가 호기롭게 개설한 대화방에 유독 눈이 갔다. 최고수준의 여성만 들어오라며 원나잇상대를 물색 중이었는데 호기심에 클릭해보자 이미 한 여성사용자가 대화에 참여 중이었다. 그녀에게 도전해볼 요량에 상투적인 소개를 담은 쪽지를 보내자 그녀는 나이와 키, 차종을 묻더니 전화로 얘기하자며 연락처를 주는 것이다.
담배갑을 들고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가득한 사무실을 나서 흡연구역으로 향했고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전화를 걸었다.
 흔해빠진 대화가 오간 뒤 그녀가 말한다.
"한가지만 확실히 하죠, 만나서 마음에 안들면 전 그냥 갈꺼에요. 깨끗히 돌아설 수 있으세요?"  
"네, 엉뚱한 짓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도 못됩니다만."
"명함이랑 신분증도 보여달라면 그럴 수 있나요?"
"그쪽이 우리가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갖는다는 각서만 서명해주시면 못보여드릴 것도 없지요."
 딱딱하게 얘기하던 그녀가 호탕하게 웃는다.

 주소를 메세지로 보내겠다는 말을 뒤로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먼저 들어보겠노라 말하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깨끗히 세안을 하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나쁘지 않아보였다.
 메세지가 도착하자 주차장을 향하는 발길이 빨라진다. 시동을 걸고 네비에 주소를 입력한다. 여의도에서 교대까지 40분쯤 걸린단다. 하긴 퇴근정체시간은 벌써 지났을 시간이다. 운전 중에도 틈틈히 거울로 얼굴을 살핀다. 그녀의 자신만만함이 신경쓰이나보다. 
네비가 안내한 주소는 교대에서 남부터미널 방향으로 내려가는 모텔촌 근방의 한 오피스텔, 도착했다고 전화로 알리자 5분 후에 내려온단다. 시계는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오피스텔 입구에선 후드를 뒤집어 쓴 여성이 걸어나온다. 도어락을 풀자 그녀는 주저없이 차에 오른다. 환한 실내등 아래에서 무안할 정도로 그녀는 내 얼굴을 꼼꼼히 살핀다. 웃음이 새어나온다. 복수라도 하듯 나도 후드 속 새하얀 그녀의 얼굴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는 시늉을 한다. 그녀도 웃어버린다. 합격이냐고 묻자 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는 손가락으로 모텔촌 골목을 가리킨다. 그녀의 마음이라도 변할까, 초입에 있는 모텔로 차를 몰았다.

 후드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그녀는 매력적이었다. 왠지 모를 장난기가 어린 얼굴 때문이었을까, 술도 한잔 같이 안하고 나랑 잘 생각이냐며 농을 건네며 난 카운터에 맥주를 주문했다. 시원시원한 성격만큼이나 맥주를 망설임없이 들이키는 그녀는 내 짖궃은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한다. 서울예대를 나와 지금은 난타공연 중이라는 87년생 그녀는 이름을 답하는데도 주저가 없다. 그녀에게 왜 남자의 신원에 그렇게도 큰 관심을 기울이냐 묻자 그녀는 자신이 아무 남성과 잠자리를 함부로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간 남자들을 만나보며 깨달은 점이라면 사회적이나 경제적으로 확고한 남성이 질척거리게 굴지 않아서라고 대답해준다. 대답의 내용보단 표정에서 솔직함이 느껴졌다.

 대화가 한참 오갔고 HK는 내게 좋은 사람같다며, 오빠같이 느껴져서 어떻게 나랑 자겠냐며 농을 건넨다. 씻고오면 나쁜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거라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되받아쳤다. 웃는다.
 샤워를 마치고 타월 한장 두르고 나온 그녀. 타월을 당기자 새하얀 그녀의 벗은 몸과 11자의 복근이 모습을 드러낸다.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가 너무 마음에 든 탓일까?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여야한다는 중압감 탓인지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샅샅히 혀로 탐하는 동안에도 내 분신은 산건너 불구경이다. 시원스럽고 직설적인 그녀의 성격처럼 그녀는 이제 그만 괴롭히고(?) 넣어달란다. 어라, 충분치 않다. 그녀를 압도하기엔 내 해면체는 충분히 부풀어 올라있지 않다. 그때 비뇨기과의 친구가 샘플로 받은거라며 내게 선물한 필름형 발기부전제가 생각났다. 잠깐 기다려달라 얘기하곤 지갑을 뒤져본다. 있다, 일단 화장실로 갖고가 포장을 벗겨내고 혀 위에 올려놓는다. 뒷면을 읽어보자 복용 30분 정도 후부터 효과가 나타난단다. 마음이 급하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그녀는 벌써 침대시트 속에 파묻혀있다. 산통이 깨진 기미가 읽힌다, 더 초조해진다. 옆에 나란히 눕자 잘 안되냐며 내 주니어를 어루만진다. 부드러운 그녀의 손길에 오히려 더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낭패다. 내게도 이런 낭패가 벌어지다니. 그녀의 부단한 노력 때문이었을까? 조금 커진 상태로 그녀 안에 간신히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커지기를 기대하며 허리를 움직여보지만 이것도 잠시, 내 분신은 고개를 숙이고 만다. 굴욕의 악순환은 계속 되었다. 그렇게 삼,사십 분 실랑이 끝에 그 유쾌하던 그녀는 슬슬 나가야할 것 같다고 말한다.

 걸어가겠다는 그녀를 굳이 태워 골목을 돌아 오피스텔 앞에 차를 세웠다. 부쩍 말수가 준 그녀에게 조심해서 들어가라 인사했다.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HK는 운전조심하라고 답해준다. 굴욕감에 몸서리치며 귀가하는데 그제서야 약기운이 내 하복부에 집중된다, 불쾌할 정도로 팽배한 하복부의 기세는 운전하는 내내 신경쓰일 정도이다. 

 얼얼할 정도로 한껏 부푼 주니어는 굴욕담의 생생한 증거라도 된 양 잠자리에 든 나를 괴롭혔다. 약효는 꼬박 하루 이상 갔던 것 같다. 안먹느니만 못했던 발기부전제였다.



 대리기사는 그녀에게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그러지 않았냐고 말한다.
 창피한 기억은 존재 자체를 잊고싶은 법 아니냐고 답해주었다. 공감의 웃음인지, 측은함의 웃음인지 모르지만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그의 얼굴이 룸미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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