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3년 6월 4일 화요일
그녀의 첫 남자
R과 처음 섹스를 했을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침대시트를 수놓은 선혈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혈흔은 생리혈 특유의 암갈색을 띄지도, 비릿한 핏내음도 맡을 수 없는 생소한 것이었다.
사실 행위 중에 그녀가 남자경험이 많지 않음은 넌지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 경험을 미루어봤을 때 성경험이 거의 없는 여성은 정상위로 시작되기 마련인 최초 삽입 시 엉덩이를 들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엉덩이를 침대에 밀착한 채 다리를 벌리고 남자를 기다리는 것 같다는게 정확한 묘사일 것이다. 그러나 경험이 축적될수록 삽입 시 엉덩이를 살짝 듦으로 용이한 삽입이 가능하단 점과 행위 중 페니스가 자극하는 여성기의 부위가 클릿에 근접해짐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악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그녀의 신음은 극심한 통증을 들키기 싫은 내밀한 호소같은 것이었음을 상기해냈다. 시트의 흔적을 응시하던 난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첫 남자라는걸.
놀란 듯한 내 시선을 그녀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고 "처음 맞지?"라는 뜬금없는 내 질문에 그녀는 별걸 다 묻는다는 듯 살짝 표정을 찡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돌이켜보건데 그녀의 기분은 해묵은 과제를 마침내 끝내버린 듯한 개운함과 생애 첫 남자가 연인이 아닌 원나잇스탠드 상대라는 착잡함 사이의 번민이었으리라.
R은 첫경험과 섹스, 어느쪽에도 그 본질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경험이 일천함에도 그녀는 섹스를 즐겨보려는 전향적 태도의 소유자였고 우리는 섹스 외적으로도 서로를 즐겁게 만날 수 있는 친구로 지낼 수 있을만큼 죽이 잘 맞았다. 우리의 끊임없던 대화 속에 간간히 터져나오는 웃음은 편안함 그 자체였다. 그런 중에도 그녀는 내게 먼저 섹스하고 싶다며 먼저 연락해오기도 하는 당돌한 면이 참 귀여웠다.
성욕에는 여러가지 사이클이 있다. R이 독점하던 두어달의 내 성생활은 어느새 농후한 노련함이 깃든 섹스에 목 말라하는 사이클에 접어들었고 그녀와의 만남을 차일피일 미루는 내게서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이 내 우선순위에 있지않음을 눈치채었으리라. 우린 그렇게 멀어져 갔다.
3년 전 미국에서 돌아와 입사 전까지 휴식을 취하던 중, 생소한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R이었다.
번호가 바뀌었겠거니 별 기대없이 걸었다는 그녀는 그해 가을 결혼한다며 내 안부를 묻는다. 난 진심어린 행복을 기원했다, 예기치 않은 결혼 전 안부전화를 받고나니 누군가의 첫 남자라는 좋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첫 경험에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하던 쿨한 그녀가 날 평생 그녀의 첫 남자로 기억할거란 사실에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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