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3년 6월 14일 금요일

귀여운 공사


 재작년 가을, 선배K는 법인을 나와 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삼촌뻘 아저씨와 개업을 했다.
 개업식이 끝나고 사무장은 젊은 사람들에게 턱을 낸다며 C모 텐(쩜오에 가깝다는 설도 있다만 계산을 안했으니 모르겠다)으로 K형과 우리 동문들을 데리고 갔다.
 지저분하게 노는 걸 즐기는 사람도 없었고, 어차피 그렇게 놀 수도 없기에 우리는 또래끼리 흔히 이야기 나눌만한 재테크, 동문의 이혼-결혼 이야기, 각기 종사하는 업계의 동향, 부모님 근황 등을 주고받고 있었다.  착석한 우리의 파트너들은 노련하게도 이야기를 끼어드는 타이밍과 조용히 시중드는 타이밍을 구분해냈는데 내 파트너였던 B의 조용한 배려와 은은한 스타일에 난 꽤나 끌렸던 것 같다. 그렇게 몇 시간의 술자리 후 그녀에게 명함을 주고 귀가했는데 쉬는 날이라며 그녀에게서 전화가 온 건 약 보름 후 였다.

 아띠제로 찾아온 B에게 난 일요일 점심을 맞아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함께 하며 테라스석에 앉아있었는데 점심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xx동성당 신자들의 인파를 내려다보며 유흥업소 아가씨와 동석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목이 조금 신경쓰이긴 했다, 하기사 어느 누가 그녀를 텐아가씨로 생각하겠냐만 말이다.

 B는 내 편의에 맞추어 몇번을 더 찾아와 티타임을 가졌고 그때마다 그녀가 지참하는 서류는 늘어났으며 내가 줘야할 자문은 점점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아무리 내 편의에 맞추어 그녀가 날 보러오는 것이었지만 그녀의 목적성이 짙어질수록 우리가 호혜의 관계가 아닌 한쪽의 일방적 호의를 전제로 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고 그녀가 내 호의를 조금씩 당연하게 여길 수록 나 역시 그녀의 꼼꼼한 요구에 점차 짜증을 냈다.

 어느덧 그녀는 내내 자문을 구하던 소송의 소장을 접수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작성된 소장 상의 주요쟁점인 전자상거래 내역 상 별첨자료와 해설을 작성해주기로 약조한 탓에 난 토요일 전체를 그녀가 보낸 서류들과 씨름하는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게 어떻게 보답할거냐고 종종 물을 때면 그녀는 크게 한턱 쏘겠다며 방긋 웃어보이곤 했는데 그러면 난 턱은 필요없으니 둘이서 같이 샤워나 한번 하자며 농담처럼 답하곤 했었다. 그러던 차 꼬박 하루가 소요된 약조의 밑작업이 끝나고 난 B에게 금융인증서를 가지고 선릉역 모 모텔 xxx호실로 오라며 일렀고 난 랩탑을 객실에 설치해놓은 채 그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간 직업적 노고를 한두시간의 섹스로 보답받으려는 내 계획은 순조로워 보였다. 그녀는 객실로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고 그녀의 usb가 내 랩탑에 삽입되는 순간부터 내 약조의 마무리작업은 충실히 이행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샤워라도 하고있지 않겠냐는 권유에 B는 내가 서류를 마무리하는 동안 샤워를 마쳤고 가운만 입고나온 그녀를 힐끔 훔쳐보며 양해 간의 암묵적 합의가 도출됨에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한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거의 끝나간다며 난 침대에 누워 한 손에는 담배를 든 채 통화 중이던 그녀에게 소식을 알렸고 십여분 뒤 그녀의 메일계정으로 문서파일을 보냄과 동시에 난 샤워부스로 날아갔다.
 부스를 열고 타월을 두른 채 나오는 날 반긴건 어느새 치마, 블라우스, 자켓까지 모조리 다시 입고 한 손에 전화기를 든 채 안절부절하는 그녀였다.
 그녀는 가게에서 급한 연락이 와 들어가봐야 한다며 연신 "어떡하지? 미안해서 어떡하지?"라고 말했다.
 무어라 말하겠는가? 내가 최소 150만원에 상당하는 서비스를 무상제공했으니 너도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계약미이행에 해당한다며 다그칠까?
 금방이라도 울 듯 서두르는 그녀를 객실 현관에서 배웅하며 난 좀 쉬다 돌아가보겠다고 그녀에게 고했다.

 홀로 방에 남아 침대에 누워 알면서도 속아줘야하는 우스운 처지와 그녀의 귀여울 정도로 영악한 처신에 연신 너털웃음만 터져나왔다. 왠지 그녀는 지금쯤 더 이상 화류계에 종사하지 않고 두둑한 통장잔고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열심히 살고 있을 것 같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