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th grader였던 해 겨울, 막 도미하여 언어적 문제와 미국학교 적응문제로 곤란을 겪던 두 살 연상의 누나를 돕다 친해진 적이 있다.
한국학교에서 자기가 얼마나 잘 나갔는지, 여기 있는 한국애들이 얼마나 별로인지 항상 불평을 늘어놓던 소위 도피성 유학생이었던 그녀는 자기 섹스경험담도 내게 서슴없이 얘기했고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라도 나오면 내 어리숙함을 한참 골려먹던 날라리(?) 유학생이었다.
하루는 숙제를 도와달라며 집으로 오라는 그녀의 집을 찾았고, 당시 정황은 야설에나 나올 법한 설정의 전형성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출타 중이었고 2층에 있던 그녀의 방 안에서 함께 침대 위에 엎드려 tv를 보다, 숙제를 하다, 과자를 먹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지고 올라 온 맥주를 능숙하게 마시는 모습을 연출함에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취기를 느낄 틈도 없었고, 그녀가 평소와는 달리 유난히 나를 만지고 장난치듯 툭툭 내 하복부를 건드리는 싸인을 읽지 못했다. 내게 섹스는 포르노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른의 영역이었으니까.
키스를 해보자는 그녀의 제안에 난 능숙한 척 혀를 사용해가며 그녀의 입술을 맛 봤고, 그러다 용기가 생겨 그녀의 tits만 한 시간 동안 빨다온게 전부였다. 그녀가 바지 위로 발기한 내 물건을 만졌지만, 바지를 벗을 생각조차 못했던 나였다.
그 후 귀국하여 고입 입시 준비에 매진하여 가장 명문이라는 외고에 입학했고 난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야릇한 경험조차 없었던, (비록 난 내가 모범생이 절대 아니라 믿었고 잘 논다고 생각했지만) 모범생의 삶을 살았다.
그렇게 대학 1학년이 되었고 짝사랑하는 여자가 생겼기에 아직까지도 섹스는 직접 해본다는건 나와 요원한 행위였지만 그해 겨울 즈음에 다다르자 어느 누가 되었건, 여체를 탐해보고 싶단 욕망에 사로잡혔다.
친구녀석이 나우누리로 주선한 미팅에서 만난 L은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다. 작은 키에 chubby했으며 선문대 일어과를 다닌다는 사실까지, 도무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다만 미팅에서 그녀는 내게 공개적으로 호감을 직접적으로 표했었고 친구들은 짖궃게도 우리를 이어주는 분위기였다.
거듭되는 술자리 끝에 대학로 한 구석에 있던 여관방에 우린 투숙했고 난 단지 섹스를 해보고 싶단 일념으로 그녀를 안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유사한 첫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손으로 만져가며 어디에 성기를 밀어넣어야 할 지 확인해두었다가도 매마른 그녀의 완강함에 삽입할 수 없었고 그녀를 젖게 만들면 오그라든 내 성기가 삽입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딜레마를 거듭하니까. 아침까지 낑낑대고 나서야 겨우 삽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난 유예해둔 첫 경험의 한이라도 풀 듯 두어시간 삽입에만 열중했던 것 같다.
다음날 점심께 그 허름한 여관방을 나섰지만 그녀와 나란히 걷는 길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진 걸까, 물론 그런 내색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말이다.
파스타가 먹고 싶다는 그녀와 식사를 마치고 그녀의 삐삐번호, 내 휴대전화 번호가 오간 뒤에야 겨우 헤어질 수 있었고 그렇게 내 첫 경험은 막이 내리는 듯 했다.
그러나 헤어진 지 몇 시간부터 L은 전화하기 시작했다. 난 이런, 저런 핑계로 전화를 짧게 끊었지만 그녀는 집요하게도 전화를 계속 했다. 당시에는 발신자표시도 없던 시절이라 난 이틀 여 만에 수백통의 부재 중 전화라는 편집증의 피해를 겪었고 간신히 그녀가 남긴 음성메세지만 확인할 따름이었다.
내가 연락을 피할수록 그녀가 남긴 메세지에 증오는 커갔고, 나중에는 자기 이모부가 어느 경찰서 서장이라며 나를 고발하겠다는 협박까지 남겨놓았기에 당시만 해도 그냥 어린 애였던 난, 온 세상에 알려질까,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으로 끙끙댔다. 그러다 아버지의 운전기사였던 xx형에게 털어놓았는데 xx형은 그날 저녁 그 아이를 만나 밥 한끼 사먹이며 잘 얘기해주어 L을 다독인거 같았고, 그 첫 경험으로 내게 남은 건 왜곡된 섹스관과 내 곤란함을 타인이 해결해주는 것에 의존하는 비겁함, 도피심리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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