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7년 10월 20일 금요일

가위


 그녀에게 뜬금 없는 전화가 왔다.
 어인 일로 전화를 다 주셨다며 빈정거리며 묻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대뜸 나더러 괜찮냐는 그녀. 분명 걱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심각한 분위기에 난 괜찮다며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내 안위를 묻는지 나 또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자초지종을 털어놓기 시작한 그녀.
 살아오며 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가위에 눌린 경험이 없다던 그녀가 방금 가위눌림을 몇 년만에 겪었는데, 그녀의 방문 께에서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단 것이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아 표정을 읽을 순 없었는데 실루엣이나 걸친 옷으로 조금의 주저 없이 나로 생각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옷을 걸치고 있었더냐고 묻자 그녀가 묘사한 옷은 연노랑 바탕에 초록색 스트라잎이 pk셔츠. 분명 내 옷이 맞고 흔한 색상, 재질의 옷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그 옷을 일상복으로 입은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신기한 노릇이었다, 골프웨어라 라운딩 때나 걸쳤던 탓.
 소름이 돋았다. 야심한 시각, 마침 도시고속도로에서 좀 쏘면서 빨리 귀가하려 엑셀레이터를 밟던 난 겁 먹은 듯 속도를 낮추게 되었고 주변 차량의 움직임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그녀는 이게 현실인지 가수면 상태였는지 도저히 분간이 가지 않는 오싹한 경험이었다는데, 말 없이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는 내 실루엣에 겁이 '왜 그래, 무서워'를 아무리 말하려 해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더란다.
 말문이 트이고서야 가위였다는걸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헷갈리는 체험을 한 그녀는 내게 뜬금 없는 전화를 주어 내 안부를 물어온 것.
 고마운 마음보다 공포가 앞섰다. 사실 이 난데없는 통화를 기억해내며 글로 남기는 지금도 닭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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