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5년 6월 3일 수요일

미니바 강탈사건

 2000년대 초반 어느 겨울, 이태원의 한국적 해석으로 홍대가 처음 각광받은 시절,

 신입생 티를 벗어가던 그녀가 만취하도록 술을 마신 후에야 간신히 그녀는 외박을 허락했다. 문제는 이 말을 꺼낸 시점이 공교롭게도 양화대교 방면 서교호텔을 지날 때였다는 점이다.(당시 홍대 번화가 주변엔 숙박업소가 드물었다) 꼴에 호텔이라고 무궁화 두어개 내걸은 현판이 부담스러워 신촌 모텔촌을 향하는 편이 안심이 되어 택시를 잡으려는데 그녀는 자꾸 가까운데로 가자며 칭얼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최고요율을 감당하며 walk-in guest로 객실을 계산했는데 십 수년 전임에도 십칠, 팔만원의 금액이 생생하게 기억나는걸 보면 정말 아깝긴 했나보다. 결국 취기에 쓰러져 잠들기 전까지 그녀를 어르고 달래서 기어코 알콜냄새 달달한 섹스를 하긴 했던거 같다.

 그렇게 엉망으로 취한 어린 남녀는 부지불식 간에 아침을 맞았고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뜨자 침대에 앉아 오물오물 음식물과 음료수를 마시던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일어났어?" 잔뜩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오빠, 여기 짱 좋아. 먹을 거 진짜 많다~"
 "......"
 
 순식간에 잠이 깼다. 아오... 하긴 1학년생 꼬마가 남자친구랑 다녀봐야 근처 모텔이나 다녔겠지 호텔을 다닐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녀는 객실 미니바가 무료라고 생각했는지 이미 그녀 옆으론 초코렛바, 작은 스낵봉지, 음료수, 미니어처 위스키의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화를 낼 수도 없고, 그저 잠자코 그녀가 뜯어놓고 남긴 먹거리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체크아웃 전까지 정말 돈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그녀를 안았던거 같다.

 객실을 나와 벨데스크에서 정산한 미니바 사용료는 6만원 얼마 했던거로 기억한다. 계산하며 그 돈이면 너랑 나랑 밖에서 제대로 된 식사 몇 번을 했겠다고 핀잔을 주자 그녀는 그렇게 비싼 줄 몰랐다며 웃음을 담아 미안하다고 하는데 더 무슨 말을 할 순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추억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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