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5년 4월 21일 화요일

스트레스와 섹스 테라피


 격무의 스트레스를 일회성 섹스파트너를 만나서라도 해소하는 여성은 많지 않다. 성 불평등을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만성적인 격무와 잦은 야근을 이삼십대에 공인받을 수 있는 직군에 여성이 희소한 점, 그리고 해당 직군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대부분 높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당직콜 대기 중인 여자 레지던트가 막간의 휴식시간을 연인 외의 특정할 수 없는 파트너와 즉흥적 섹스로 보낸다는건 꽤 위험부담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말로 즉흥적 섹스가 주위에 알려졌을 때 감수해야 할 소문과 모욕이 남성보단 여성에게 훨씬 가혹한 것 아니던가. 그런 연유로 소위 전문직에 종사 중인 여성을 쾌락의 대상으로 접한 기억이 많지 않았던건 이에 대한 방증일테니.

 4수 끝에 간신히 수도권 의대에 입학해 비슷한 연차의 인턴, 레지던트들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녀는 같은 병원 여의사 커뮤니티에서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항상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 수준을 교집합으로 하는 남성 커뮤니티에선 오히려 구성원 간의 연배에 따른 위계질서가 약화되는 성향을 띄는데 여성 커뮤니티는 교육수준과 무관하게도 위계질서가 공고한 것이어서 그녀는 자기보다 어린 여자 전공의에게 꽤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간간히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대부분 강 모 선생님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그녀였고 나 역시 입사 연차가 낮은 일개 직장인으로서 힘내잔 얘기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이트에서 만났다는 방향성을 잊지 않고 음담의 수위를 조금씩 높여가는 나였지만 사실 그녀와의 뜨거운 애프터에 대해선 별로 기대하지도, 되지도 않았다. 똘망똘망 깔끔해보이는 인상이었지만 테이블 아래로 훑었던 그녀의 다리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녀가 근무처는 인천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이라 굳이 짧은 만남을 감수하며 그 원거리를 달려가기엔 나도 시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킾 차원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그녀는 어느 새벽녘 안자냐는 뻔한 문자를 보내왔고 난 평소처럼 어떻게 완곡한 만남의 거절의사를 전할까 고민하던 차 그녀는 자신이 사당까지 올테니 만나잔다. 이렇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새벽녘이라 아무리 오래걸려야 20분이면 당도할 거리까지 왕림하겠다는 그녀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사당 모텔촌에 먼저 도착한 난 객실에 누워 그녀와 통화하며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어야 세 시간 밖에 없다며 객실로 들어선 그녀의 말이 오히려 안도감을 줬다, 나 역시 누군가와 아침을 함께 맞기엔 혼자 수면을 이루는 쪽이 훨씬 마음 편한 것이었다. 분초가 아깝다는 듯 바로 샤워부스를 향한 그녀를 기다리며 옷을 훌훌 벗어버린 내게 그녀는 물기조차 마르지 않은 몸으로 안겨왔다. 그리고 말 그대로 쾌락의 정상만을 좇는 몸짓이 난무하는 정사가 오갔다. 그녀는 빨리 느끼고 싶은 조바심이 느껴질 정도로 주도적이었고 그녀의 적극성이 가중될수록 난 관조적인 입장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더욱 그녀의 구석구석을 뜯어볼수록 유달리 비만한 하체가 내 성욕을 저하시켰다.

 그렇게 한시간 여를 정상을 향해 달렸지만 어느 한쪽 다다르지 못했고 다다를 기미 또한 없었는지 침대에 나란히 누워 그녀의 불평을 들어주다가 이제 돌아가봐야겠다는 말을 건네는 그녀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혹 인천까지 그녀를 태워줘야하는 심적 압박이 들까봐 난 토막잠을 자고갈테니 먼저 가보라고 했고 내 제의가 차라리 다행이라는 듯 그녀 역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캔버스화를 신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린 무탈하게 헤어졌다.

 해가 두어 번 바뀌고 그녀를 마주한건 다시 줄리아나였다. 요즘은 전공의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다는 그녀와 나는 아무 일이 없던 사이보다 더 쿨하게 대화를 나눴고 이내 우리 룸에서 일어선 그녀를 난 이 밤의 보험 마냥 생각해뒀건 만 아침해를 맞이하며 나이트 밖에서 최후의 결사항전을 벌이던 우리 일행을 지나 그녀가 다른 남자와 택시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기억을 더듬어볼수록 나와 정을 통한 여의사가 일생에 단 두 명 뿐이라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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