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4년 4월 4일 금요일

수집욕

 미국에서 살던 열살 무렵 야구카드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처음에는 멋진 사진과 기록이 빼곡히 담긴 디자인에 끌려 모으기 시작한 것이 차츰 카드덱이 쌓여가며 목표의식을 갖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가령 내가 제일 좋아하던 팀 로스터의 루키카드를 수집한다던지, 친필싸인이 담긴 카드를 수집한다던지 따위의.

 섹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학부시절엔 학교별 캐터고라이징을 오만하게도 나름의 스테레오 타입에의 정의를 내려보기도 했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직군별로 수집욕이 발현되었다, 물론 섹스의 본질에 부합하는 상대가 우선이었겠지만 한번쯤 품어보고픈 직업의 소유자라면 기어코 수집해내고야 마는 악취미.

 지금도 잔존하긴 하지만 내 성생활의 이면을 들킬 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인지 학연, 지연 등 접점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이들을 대함에 있어 조심스러운 편인데, 그런 강박으로 난 정작 학부재학시절 동문인 여성과 잠자리해본 경험이 없었고 우리 학교 여자애들 중 육체적 관계에 중점을 둔 여성을 만나기가 가능할지 의구심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 의구심은 갈망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졸업에 임박했을 무렵 마침내 사범대학에 재학 중인 '미니'를 만나게되었다.

 당시 그녀는 학교 근처에 살며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었는데 남자친구를 사귈 정서적 여건이 안되지만 섹스는 가끔 생각나는 상태라 고백했기에 우린 학교에서 멀지 않은 사당역 모텔촌을 전전하는 만남을 이어갔다.  정작 학교에서는 모텔에 두고 간 내 전공서적을 챙겼다가 전해주려 수족관 앞에서 만난 한차례 뿐이라는 사실이 이 비밀스러운 관계를 대변하는 듯 하다.

 그녀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것은, 땀이 많았던 그녀에게서 가끔씩은 좀 불쾌한 체취가 느낀 적이 몇차례 있다는 사실과 날씬했지만 체형 자체가 예쁘지 않았다는 잔상 정도인 것 같다. 못되어도 열댓차례는 몸을 섞은 사이인데 떠오르는 건 어렴풋한 그녀의 얼굴, 학교, 전공 그리고 꽤나 잘 맞았던 속궁합 뿐이라니 참 비인간적이다. 그럼에도 카드콜렉션에는 내 첫번째 xx대학교 동문으로 간직되어있으니 내 알량한 카드북엔 생생히 살아있는 그녀..

여성의 성생활을 소위 스펙으로 예단하는게 얼마나 쓸모없는 편견인가 깨닫게 해준 시금석과 같았던 그녀에게 감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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