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4년 2월 24일 월요일

섹스의 완충지대

 뻔히 알고 있다, 이 만남이 이끌 우리의 종착점이 어디인지를.
 그러나 행선지를 바로 침대로 옮기기란 많은 여성들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다, 비단 불장난의 상대로 날 판단함에 있어 고민의 정도를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자신을 침대로 끌어들이기 어렵지 않은 상대가 된다는 두려움은 그들에게 자존감의 문제로 치환된다. 쉬운 상대가 된다는 것은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직결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많은 여성에겐 심리적 완충지대가 필요로 한다. 그것이 이자카야에서 만취토록 마시는 술자리가 되건, 아니면 심야의 적막한 46번 국도를 그의 조수석에 앉아 달리며 쌀쌀한 바람을 차창 너머로 느끼는 것이건 말이다. 섹스에 앞선 이 데이트라는 의례적 과정이 얼마나 요식행위에 불과한가는 중요치 않다. 단순히 날 바로 침대에서 품을 수 있는 상대가 되어주기에는 너무 쉬운 존재가 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할 따름이다. 간혹 어떤 여성에겐 얼마나 대우받는가의 문제란 금전적인 잣대로 해석된다. 물론 화대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지만 차 한 잔 혹 칵테일 한 잔을 마시더라도 고급스러운 라운지바를 택함으로써 이 남자가 나와 잠자리를 함께 하기 위한 과정에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척도를 재단할 따름이다.
 '첫 만남에 섹스를 하진 않아.'라고 강변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수차례 데이트한다고 자고싶지 않은 상대가 자고싶어지는 것도 아니요, 이 남자의 목적의식이 처음과 달리 연애상대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청담 부띠끄 골목 라운지바에서 30십만원 짜리 와인을 함께 거푸 들이킨다고, JJ에서 세금 포함 3만원 짜리 진토닉을 몇 순배가 돌도록 마신다고 그가 당신을 침대로 끌어들이기 더 어려운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어차피 당신을 경시하고 무례를 범할 사람이라면 만남이 침대에서 시작되든 몇 차례 요식적 데이트 후 침대로 이어지는 만남이든 달라질 것은 없다, 전적으로 사람됨의 문제로 귀결될 따름이다. 존중할 사람은 어떤 형태로 상대를 만나더라도 그녀를 우습게 대하지도, 무례를 범하지도 않을 것이다.
 심리적 완충지대의 무용론을 설파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당신의 마음을 편케 할 수 있다면 내 경제력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기꺼이 거칠 수 있는 과정이니까. 다만 사람은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변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연애상대와 섹스상대의 구분이란 것이 얼마나 모호해지고 별다를 것이 없어짐을 깨닫게 된다면 말이다, 불꽃 튀는 사랑이란 불꽃 튀는 섹스의 다른 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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