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책 한권의 무게


 사람이 싫어지는 계기는 정말 사소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사소한 발견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왜 그렇게 섹스 중 그녀가 미간을 찡그릴 때 그 표정이 너무도 싫었는지 모르겠다.

 K는 EBS에서 xx과목을 가르치던 유명 방송강사였다.
 그녀는 임용고시 후 EBS 인근 고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고교교사로  방송사에 파견 형식으로 근무하며 방송에 출연했고 월급명세서만 두개, 추가적으로 쏠쏠한 방송교재+문제집 인세까지 벌어들이던 고소득자였다.(연소득이 세후 2억 정도라기에 무척 놀랐었다)

 음담패설도 불사할 정도로 편한 내 친구이자 그녀의 BFF였던 유부녀 A는 서로 편히 만나보라며 K를 LG전자 여의도사옥에서 근무하는 Public relation 담당자라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로비 커피샵에서 만난 K에게서 난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녀는 날 썩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자기 첫인상을 묻기에 학교선생님 느낌이라고 답하며 나쁜 뜻은 아니라고 덧붙이자 그녀는 흠찟 놀라는 눈치로 말이 없더니 사실은 자기가 EBS에서 xx를 가르치는 방송강사이자 학교 선생님이라 털어놓았다. 그 자리에서 스맛폰으로 그녀를 검색해보자 강의 동영상부터 강의평까지 검색결과가 주욱 나열되었고 그녀에의 호기심도 함께 살아나는 것이었다. 유명방송강사와의 섹스, 흥미가 생길만한 이벤트였다.
 기실 그녀나 나나 A가 '편하게' 만나보라는 의미에 대해 모른 척 할만큼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커피숍에서의 담소는 스카이라운지에서의 칵테일로 이어졌고 호텔을 나와 난 역삼동 모텔촌으로 차를 몰았고 우린 하나가 됐다.

 야근으로 점철된 내 삶만큼이나 그녀도 바쁘디 바쁜 삶을 살고 있기에 난 부담없이 그녀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매봉역 께 3-bed짜리 빌라에서 홀로 살던 그녀를 난 야근 후에도 부담없이 찾을 수 있었고 피곤으로 지친 나를 그녀는 그녀의 퀸사이즈 베드에 눕혀놓고 위에서 열정적으로 나를 탐하던 그녀와의 섹스는 참 편리한 것이었다,  그게 싫지 않았다.
 우리가 세번 쯤 잠자리를 하고 내 가슴팍에 안긴 그녀는 내게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마지않으며 아직도 그리워하는 그녀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해주었고 난 네가 근친상간 취향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농담으로 대꾸해주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무거운 돌덩어리가 놓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음날 K는 내게 주고싶은 책 한권을 사놓았다고 문자를 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내 아래에서 쾌락에 신음하며 찡그리는 미간의 주름이 떠올랐다. 그녀가 부담스러워졌다, 싫어졌다. 난 한동안 답을 하지 못한 채 그녀가 보내오는 안부문자까지 모두 무시했고 그러던 차 얄궃게도(참 편리하게도) 스마트폰을 도난당하며 그녀의 연락처를 잃어버렸다.

아직도 집 근처에서 막역한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 그녀가 살던 매봉역 유흥가를 종종 찾는다.
비록 연락처는 잃어버렸지만 그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의 초인종을 누르고 술이나 한잔하며 이야기 나누자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안그러는 편이 그녀에게도, 내게도 나은 걸 알기에 올해 봄 한달 여의 기억을 추억으로 남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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