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7년 3월 17일 금요일

철 없는 남자(들)

 적지 않은 나이 차임에도 유독 호형호제하며 친하게 지내는 형들 중엔 유독 72년생이 많은데 H가 그 중 하나다.
 모 유명 유도학과에 재학 중 일본어의 재미에 눈을 떠 유려히 구사하게 된 H는 무도가의 길 대신 샐러리맨의 삶을 택했는데 그가 재직하던 회사와 연이 닿아 몇 차례 술자리를 갖게되었고 그의 직선적이고 호탕, 단순한 성격에 신선함을 느껴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는 인천에 거주하는 까닭에 나와 생활권이 겹치지도, 벌써 오래 전에 퇴사하여 더 이상 사회적으로도 마주할 일이 없었지만 인간 그대로를 좋아해준다는 드문 순수함이 느껴지는 그를 아주 가끔씩이라도 마주해 술잔을 기울이던 나였다.
 그렇지만 무척 고단한 직장생활이 이어진 요 몇 년,  그 역시 바빴는지 우리는 안부조차 서로 전하지 못했고 전화기를 교체하며 그의 번호를 저장하는 것을 잊었는데 그제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기에 받아보니 그였다.
 그는 연락 한번 않다가 용건이 있어 전화함을 사과부터 했는데 사실 우리 직업군엔 너무도 흔하게 있는 일이라 괘념치 말라고,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사실관계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한국나이로 46인 그가 지난 해 가을, 수영장에서 만난 20대 여성과 혼인신고를 했다고 한다. 여성의 양친이 극렬한 반대를 하는 통에 동거하지는 않았으나 여성의 주변인들도 모두 혼인사실에 대해 인지할 정도로 비밀스러운 행각은 아니었나보다. 그러나 여성은 H가 약속한 금연, 금주를 이행치 않았음을 이유로 다툼이 잦아졌고 이혼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이 혼인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싶은 의사가 조금도 없음에 관계를 회복하려 애를 썼지만 서로 격한 말이 오가던 중 '오빠가 이혼 안 해준다고 해도 이제 간통죄도 없어졌고 난 내 마음대로 남자도 만나면서 살 거'란 말에 격분한 H는 공무원 2차 시험을 앞두고 있는 그녀의 인생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

 그에게 난 그녀가 가정법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상담을 받는다는 가정 하에 어떤 대응을 충고 받게 될 지 생각해보자며 말을 시작했다.
 일단 법정이혼은 불가능하다. 설사 금연, 금주가 혼인의 조건이었다고 해도 이가 관철되지 않았을 때 혼인이 무력화될 수 있다면 세상은 이혼남, 이혼녀로 넘쳐날 것이다. 동거 치 않아 실질적으로 혼인관계로 볼 수 없었다는 논리 역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무시되는 꼴이요, 동거여부로 혼인관계가 부정당한다면 수 많은 주말부부, 기러기가정에는 참화가 몰아칠 것이다. 혼인취소소송이 가능한지 묻는 그에게 난 단답을 해주었는데, 기본적으로 혼인취소소송은 혼인기간과 기여분에 대한 해석이 배제된 이혼소송과 같다고 답해주었다. 즉 혼인취소가 되어도 기록은 남는다. 혼인무효소송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런데 H에게 상식적으로 혼인이 무효가 될만큼 중대사유를 숨긴 것이 있는지를 묻자 그는 절대 없다고 한다.
 아마 여자는 또래 남자들과 달리 융숭하게 대접해주고 아낌없이 베푸는 멋진 노총각에게 푸욱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시원치 않은 사업을 한답시고 자주 외국이나 오가지 변변치 않은 재산을 축적한 그와의 결혼을 반대할 수 밖에 없었을테고 뜨거운 연애기간에 취한 둘은 서로에게 사랑의 증표라며 덜컥 혼인신고부터 저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뜨거웠던 연애가 식어가고 점차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고 공무원 시험 1차까지 합격해놓고 보니 그 자상하고 멋진 오빠가 꼰대 아저씨로 보이기 시작했을테니 얼마나 혼인신고를 후회했을까.

 형이 이혼을 원치 않는다면 지금 당장으로썬 혼인관계가 타력에 의해 종지부를 맞을 순 없다고 말해주었다. 아마도 여자가 욱한 마음에 다른 남자와 자겠느니 뭐니 떠든 모양인데, 간통이 폐지됐다고 민사적인 책임으로부터 면책받을 순 없다고 얘기해주었다. 배우자와 배우자의 상간남 모두에게 혼인파탄의 책임을 물어 배상을 받을 수 있고 그녀가 공무원에 임용단계 혹 기임용상태일 때 불륜으로 인한 공무원품위유지 위반을 들어 민원을 제기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니 제발 한참 어린 그녀가 마음이 변했다고 욱해서 멍청한 짓 하지말고 잠자코 혼인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절대 배우자가 양친과 거주하는 집에 그녀의 허락을 얻었을지라도 발을 들이지 말라고 충고했다. 동거인이 세대주인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녀의 부모가 이 혼인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를 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그녀의 허락만으로 설사 그들이 부재했다 하더라도 집에 발을 들일 때 주거침입으로 형사처벌 받을 수 있음을 주지했다. 이런 식의 반목이 형사적으로도 치닫게 되면 파탄론이 점점 힘을 받고 있는 지금, 법정이혼도 가능할 수 있으니 말이다.

 H형은 아직도 참 철이 안 들었다는 생각을 하게된 통화였다.
 그리고 괜히 둘만의 대면 기회를 만들어 그 여자와 한번 자보고 싶어졌다.
 나도 참 철이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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