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원치 않는 임신

 이혼 경력이 한 차례 있는 30년 지기가 두번째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의 이혼과정과 여성편력을 지켜보며 내가 내린 결론은 그가 외로움을 견디는데 극도로 취약한 성격이란 것이다. 더군다나 사회, 경제적으로 또래 남성 중 최고 수준인 그가 매번 요란한 결말의 연애사를 양산해 이목을 쏠리게 한 이력을 보자면 그가 굿가이컴플렉스에의 강박을 가지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너무도 빠르게 사랑에 빠지며 교제하는 동안 그 누구보다 달콤하고 신사적인 연인이 되어주지만 관계가 종국을 맞을 때조차 비수를 던지는 대신 장미꽃 한다발을 안기며 사랑해서 떠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남겨 사람을 미치게 할 것 같은 녀석이었다.

 막상 새 결혼준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그의 결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가 생각하던 사람과 달랐고 현실적인 고민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성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재직 중이던 미색의 스물 대여섯의 그녀가 재혼인 친구녀석과 결혼을 지나치게 서두르는 이유가 난 미심쩍을 수 밖에 없었고 일용직 근로자인 그녀의 부친과 전문대를 나와 하는 일 없이 백수짓 몇 년 차라는 여동생까지 그녀에게 전적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처지였기에 난 친구에게 차후 처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그의 몫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주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진행된 혼사를 뒤엎기란 모진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고서야 쉽지 않기에 그는 그녀를 해외에 거주 중인 그의 부모님께 인사시키기 위해 함께 비행기에 올랐고 열흘 가까운 예비허니문을 다녀오고서야 이 결혼을 엎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귀국 후  어떻게 이별을 고해야 하나 방법론만을 고민하던 친구는 두어 주가 지나 악몽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그녀가 그 열흘 여의 여행 동안 자신의 아이를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다. 부쩍 자신을 피하는 눈치의 남자친구를 다잡아보려는 절박함이었는지 그녀는 임신사실 마저 자기 회사에 알려 야근, 방진시설 출입 등에서 배제될 수 있었고 친구는 결혼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그녀의 집착 수위가 높아질수록 공포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답지 않게 단정적으로 이별을 통보해버린 것이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녀는 카페에서 발악을 하듯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고 욕설을 해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더 이상 홀몸도 아니며 결혼소식을 동네방네 다 알리고 다닌 그녀의 처지에 충분히 그럴 수 밖에 없으며 그가 자초한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내 말에 그는 수긍하면서도 그녀가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이는 그냥 낳겠다고 선포했다기에 법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할 지 내게 물어왔다.  법감정과 법의 간극을 떠올리며 난 지극히 법리적 관점에서 몇 가지 수칙들을 일러주었다.

 1. 절대 낙태를 종용, 설득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허용되는 이유(장애아 잉태 등)를 제외하고 모든 낙태 시술은 형법 상 금지되어있다. 불법행위를 종용했을 때 형사 상 처벌은 물론이요, 강요받아 시술한 여성에게 차후 민사 상 책임을 추궁당할 수 밖에 없다.

 2. 진정 원한다면 아이를 낳도록 하라고 말한다. 단 난 친권에 대해 포기할 것이며 양육비에 대해선 성실 의무를 이행할 것임을 알린다.
  친권을 포기한다는 얘기는 사실 아이에 대한 내 애착이 없다는 표상으로서의 충격요법 밖에 주지 못한다. 어차피 친권을 포기하더라도 면접교섭권이 박탈되는 것도 아니요,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소득수준에 비례해 양육비를 지급해야 함에는 변화가 없다.

 3. 결국 여성 스스로 낙태를 결정해 수술받고 정신적 피해, 건강 상 피해, 향후 임신능력의 저하를 들어 그에게 민사소송을 진행하겠다고 겁박한다. 어떻게 해야하나?
 잔인하게도 낙태 자체가 불법시술이기에 불법행위에 대해 어떤 보상도 청구할 수가 없다. 하다못해 시술비를 청구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남성이 불법수술로 잃게 된 자기 아이에 대해 민형사 상 책임을 그녀에게 물을 수 있고 그녀는 꼼짝 없이 남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하며 형사처벌까지 피할 수 없다.

4. 현실은...
 결혼을 고민하는 중 임신사실이 계기가 되어 행복한 혼인관계에 이르는 커플도 많지만 임신을 무기화해 주저하는 결혼을 촉구하는 여성도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그런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답지가 많은 건 결코 아니다. 학연, 지연으로 얽힌 우리나라 네트워크에서 싱글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미혼여성에게 감당키 어려운 난제들이 평생 산재해있을 수 밖에 없고 아이 또한 세인들의 편견 어린 시선과 싸우며 살아가야 하기에 그녀들은 결혼 않겠다는 남성의 아이를 지울 수 밖에 없다. 꼭 연인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다. 원나잇으로 스쳐보낸 여성이 임신했다며 책임지라는 일방적 전갈을 보내도 마찬가지다. 난 결혼의사가 없다. 그러나 당신이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다면 양육비를 성실하게 지급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출산을 택하는 여성은 극히 드물 것이다. 거듭 난 친구에게 충고했다, '절대 낙태를 종용하지는 않되 임신의 책임이 네게도 절반이상 있는 만큼 도의적인 책임을 다 하라', '낙태를 설득하지는 않되 그녀가 낙태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수술비와 신체적, 정신적 회복을 위한 비용을 모두 감당할 생각임을 밝혀라'. '그리고 도의적 책임을 너 뿐 아니라 너희 집에서도 통감하고 있다는 제스처로써 너희 어머니께 모두 털어놓고 그녀의 수술, 회복 과정에서 너희 어머니가 위로를 줄 수 있도록 입국을 부탁드려라'.
 그는 내 말을 따랐고 유럽 여행 중이시던 당장 여행을 중단할 수 없어 보름 후 입국을 결정하셨다. 그러나 참 편리하게도(?) 그녀는 자연유산을 했고 모든 해프닝은 자연소멸되었다. 그러나 그의 모친은 예정대로 입국해 그녀를 위로하고 친구의 변심을 사죄하며 진심어린 사과와 정신적 충격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얼마 간의 돈을 쥐어주셨는데 그녀는 그 진심이 느껴졌는지 더 이상 드라마퀸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친구는 어머니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쭐이 났다고 한다.
 1년 여가 지난 지금, 그는 성사 직전에 어그러진 두번째 결혼의 시련을 극복하고(?) 제대로 된 두번째 결혼을 생각 중이라며 또 어리고 반반한 아가씨에게 부유하고 젊은 아저씨로 분하여 데이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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