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7년 2월 14일 화요일

이리떼와 사자떼


 늦은 귀가를 앞두고 간절해진 술 생각에 당시 부쩍 가까워진 G에게 전화를 했던 2016년 어느 늦여름,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 M과 가로수길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고 했다. 동석을 제안하길래 한달음에 달려간 시간은 오후 열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그녀들은 선선해진 날씨를 만끽하며 테라스석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늘 G는 주변 여자친구들 중 미녀에게만 가혹한 미의 기준을 들이대어 소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본 M은 인조미가 느껴짐에도 개성이 느껴지는 미인이었다. 몇 해 전 M은 G와이태원 글렘에서 지금의 배우자를 만났고 결혼 3년 차에 접어든 베이비리스 유부녀였다. 다소 놀았다는(?) 그녀는 결혼 이후 내조에 전념하는 헌신적인 아녀자로 기꺼이 변신했다는데 언제부턴가 바빠진 직장사정으로 그녀를 소홀히 대하는 남편에게 섭섭함을 키워가던 그녀는 뉴욕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남편의 부재를 처음으로 제대로 만끽하려는 심산인 듯 거침없는 술자리를 선보이고 있었다. 취기가 올랐던 G는 나 말고도 다른 여자친구 A를 술자리로 불렀다고 했는데, 내가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아 A는 그녀와 가끔 섹스하는 사이라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친구까지 데리고 나타나 성비를 맞춘 술자리로 만들고 있었다.
 생면부지의 남자들과 소개를 주고받고 내 직무와 관련된 그들의 사업적 문의사항이 오가는 뻔한 대화가 오가고 있는데 취기가 잔뜩 오른 M은 우리 대화가 지루하다며 역정을 부리더니 가슴에 난 뽀루지 때문에 고민이라며 앞섬을 풀어내며 대놓고 끼를 부리는 것이었다. 화장품 제조업체를 한다는 사내들은 이에 한껏 호응하며 그녀를 부추기기 정신없었다. A의 존재는 그들에게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는지 대놓고 오늘 어떡하면 M을 데리고 나갈까 다음 행선지를 불러대는 그들보다 내가 얼마나 나은 인간일지는 모르나 적어도 난 G의 기분 정도는 당연히 배려할 줄 안다는 점에서 그들이 딱해보이긴 했다.
 저런 한심한 수준의 남자들이 가까운 고교동창에게 마음껏 추근대는 것도 친구입장에선 마음이 쓰였을텐데 이날 M은 저들 모두와 자고도 남을 기세로 부응하고 있었기에 G는 그녀를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몸을 가누는데 힘겨워하는 M을 나와 G는 부축하고 A와 사내들에게 급한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왔다.
 택시에 태워보내려는데 M은 딱 한 잔만 더하자며 고집을 부린다. 어쨌든 이리떼 목구멍까지 들어간 그녀를 끄집어냈으니 걱정할 일도 없겠다, 기껏 술자리까지 찾아왔더니 제대로 마시지 못한 것도 아쉬웠겠다 우린 근처 횟집으로 향해 오징어회에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M이 화장실로 자리를 비운 사이 G는 그렇게 고고하던 그녀가 이렇게 소탈함을 넘어서 무너진 모습이 적응되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과의 불만족스러운 성생활부터 결혼 이후 얼마나 답답하게 살았는지 푸념은 계속 되었고 나 역시 점점 취기가 올라갔다. M은 G와 나의 섹스는 어떤지 계속 물어댔고 셋이 해본 적도 있냐고 물어봤을 때 난 오늘 만남의 종착역은 쓰리섬임을 알 수 있었고 M은 작정이라도 한 듯 신랑이 부재한 노원구 그들의 집에서 한 잔 더하자며 우리를 이끌었다.
 그녀의 주상복합 1층 편의점에서 살 필요도 없는 안주꺼리와 술을 사고서 그녀의 집에 들어섰고 결혼사진이 걸려있는 집 안 곳곳을 함께 둘러보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기엔 이 술자리의 여파는 체력적으로 날 고갈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차라리 빨리 셋이 벗고 뒹굴었으면 성욕이 동했을 지 모르겠는데 또 맥주와 와인 몇 순배가 돌고 섹스토크가 이어졌지만 G와 내겐 이런 상황이 새로울 것도 없을만큼 많은 경험을 함께 공유했기에 차라리 흥미롭게 대화하는 척 연기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고교동창 둘이 키스를 시작하고 내 물건을 움켜쥔 M이 내 입술을 갈망하고 G는 나와 M 사이를 오가며 애무하는 상황은 모든 남자의 섹스 버킷리스트에 있음직한 이벤트기에 흥분할 수 밖에 없었다.
 셋의 숨소리가 거칠어짐에 바지를 벗기고 한껏 부푼 내 성기를 꺼내려는 시도하는 M을, 그럼에도 난 완곡하게 제지하기를 거듭했다. 지난 술자리에서부터 M이 묘사한 남편의 답답한 캐릭터를 듣고 한번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며 귀국하거든 넷이 술자리를 갖자는 제안을 하던 내 일말의 죄책감도 한 이유였고, 이로말미암아 왠지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본능적 경계가 들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서로 물고빨던 중에도 끝내 끝까지 가지 않는 내 의중을 G는 읽어내지 못했는데 내 눈짓을 보고서야 적당히 자리를 마무리하는 인사와 함께 M의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린 가로수길까지 다시 택시를 타고서 각자의 차에 올라 운전해 귀가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G 역시 너무 멀쩡한 정신으로 운전할 수 있어 놀랐다고 한다.
 다음 날, 기억이 제대로 안나는 모양인지 창피한 모양인지 M은 G에게 눈치를 살피는 뜬금없는 안부인사를 건넸다고 하고 우린 또 재미난 추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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