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탐색기
2015년 1월 14일 수요일
비열한 화친책
여자친구에게 미안할 만한 일을 저지를 때마다 난 치사하게도 그녀의 다급한 결혼의지를 이용해 그녀를 달랬다. 모친은 밖에서 나와 식사를 하며 기탄없는 대화의 장을 갈망하셨기에 그 자리에 그녀를 대동하더라도 개의치 않으실 게 분명했고 내가 만나고 다니는 여자란 모조리 가볍고 진중하지 못한 만남의 연장일거란 모친의 짐작을 혁파하기엔 그녀의 신상만한 것은 없었다, 그녀는 나이도 많았고, 눈부신 미색도 아니었으며 의사 부모를 둔 연수원 출신 변호사였으니 말이다. 혼기 막바지에 접어든 그녀에게 내 모친과의 식사자리란 그녀에겐 나와의 결혼이 실체화되는 과정이었기에 어느새 그녀는 토라진 기분을 잊고 한껏 들뜬 어조로 식사자리에서 무얼 입을지 고민을 늘어놓고야 만다.
그렇다고 내게 그녀와의 결혼의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 학력, 직업, 집안배경, 가산 따위만이 괜찮은 미혼남으로 결혼시장에서 내가 여전히 생존해 있는 유일한 이유로 생각할만큼 자기애가 부족한 나였지만 그녀는 나만큼 나이가 많다는걸 제외하곤 아쉬울 것 없는 상대였다.
외부미팅 후 회사로 돌아가는 어느 점심, 허기를 달래려 맥드라이브로 차를 몰았다.
주문 후 계산대로 돌아서자 스무살이나 먹었음직한 평범하고 수수한 외모의 여자알바생이 카드를 받아들며 싱그럽게 웃어준다. 몸을 돌려 종이봉투 한보따리를 집어들고 신용카드와 함께 건네며 미소 지어주는 그녀. 방금 몸을 돌렸을 때 유니폼 밑으로 드러난 팬티라인만 생각난다. 달콤한 향취와 수분을 품고있을 것 같은 그녀의 뽀얗고 탄력넘칠 피부에 정신이 혼미하다. 아무리 엄격한 운동과 고가의 화장품으로 열심히 자신을 관리해도 젊음이 선사하는 여성미를 이기기란 어렵단 사실에 남자로 태어났음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르신, 친구들로부터 결혼잔소리 들을 때 마흔 몇 살 먹고 스무살 짜리와 결혼하겠다고 농처럼 던진 말이 사실 진심이기도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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